나도 한국사람 이지만,
우리 한국사람 은 누가 뭐 잘된다고 하면 꼭 뒤 따라서 옆에다
가게를 차리는 이상한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꼭 있다.
벧엘여행사 가 잘된다고 소문이 나니까,
최ㅇㄱ 라는 선교사 님께서는 허가도 안내고 그랑프리여행사 라고 하는 여행사를 차려서 이름만 내걸고 경쟁업체 로 등장을 하였다.
선교사 로 왔으면, 전도나 하고, 기도나 할 일이지, 교회일 은 내팽개치고 돈벌이에 뛰어들어 좁은 교민사회 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신분이 선교사 이다보니 인격을 존중해 주는 의미에서 가서 멱살잡고 싸울수도 없었다.
아무튼 좀 기분이 많이 좋지 않았다.
혹시 본인이 이글 을 보시게 된다면...
'주여삼창' 하시고...
진심으로 '통성회개'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얼마시간이 또 지나니 이번에는 단체손님을 보내주던 한국의 여행사에서 손님이 오질 않았다.
이상하여 자세히 알아보니, 전에 내가 바쁠 때 가이드 좀 시켜줬던 사람이 직접 손님을 받아서 진행을 하고 있었다.
보통보면 다른나라는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 로 가이드를 주로하는데, 루마니아는 그때는 그런 유학생형편 이 않되다보니 같이 살고있는 교민에게 짬짬이 가이드부탁 을 좀 하였었고,
그렇다보니 그런일이 생기게 되고 말았다.
또 조금있으니 이번에는 한국식당 KOREA HOUSE 에서 손님을 받아 진행을 하고 있었다.
여기도 단체손님 들 오면 데리고가서 식사를 하곤 했었는데....,
결국은 이 모든게 남따라 같이 장에가는꼴 이되어 버렸다.
자기가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해논거 가로채는 식이니 그사람들 얼굴 쳐다보면 참 야비하게도 느껴졌다.
덤핑을 한건지 어렵게 발굴한 거래처 손님 들을 중간에서 자기네가 직접 받아서 행사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단체패키지 가 갈라지니 이 또한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좁은 교민사회 에서 싸울수도 없고...
억지로 이해를 하고 넘어 가는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같이 먹고 살자는데...
어쩌겠는가?...
참으로 서글퍼지 는 현실 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 세계의 경제는 팩시밀리 와 텔렉스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로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인즉,
한국의 여행사 에서는 그동안 Local 현지여행사
에게 의뢰 하였던 호텔.식당.입장료.차량. 등 모든부분 들을
이제는 한국에서 직접 자기네가 인터넷을 통하여 직접거래 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보니 결국 현지여행사 에겐 가이드 만 의뢰를 하는것이었다.
결국 현지여행사는 가이드만 해서는 타산이 맞지 않았고
따라서 단체손님 에대한 메리트 는 이제 없어져 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이것마져도 얼마가 또 지나니 'Through Guide' 라고해서 한 가이드가 전일정을 동행하여 가이드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초창기 에는 좀 바빴던 여행사 일이 이제 이러한 저러한 여러가지 복잡한 인간적. 시대적배경 의 변화에 의해서 여행사 일은 이제 접어야 할 시기가 온것같아 그만 접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
여행사 다음으로 주력으로 하게된일이
초창기 루마니아 에 진출하려는 기업체 와 연관된 일을 하는거로 아이템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부카레스트 지역 담당 경찰서에서 좀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왠일인가 싶어 가보았더니
담당자가 서랍에서 뭔가를 꺼네 보여 주었다.
내 BETEL TOUR 홈피를 출력하여 루마니아어 로 전부 번역을 해놓고 내 명함 까지도 보여 주는 거였다.
아마 루마니아 에서 같은하늘 아래 같이살고있는 누군가 가
벧엘여행사 가 잘된다고 하니까 허가없이 영업하는줄알고 경찰서에 신고를 한 모양 이었다.
사촌이 땅사면 배가 아프다던데....
이웃사촌 인 누군가가 배가 몹시 아팠었나 보다.
나에겐 참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쇼킹한 사건 이었다.
그래서 긴설명 필요 없이
‘내일 여행사 허가장 하고 집계약서를 가져와서 보여주겠다’
고 하고는 경찰서를 나왔다.
그래서 나는 이런때 대비를 위해서 집계약서 쓸때 꼭 직접 추가로 작성하는 내용이 있다.
‘한국에서 가족 이나 친구 들이 왔을 때 우리집에서 잠을 자도 괞챦다’ 라는 글귀를 꼭 써넣고 집주인도 싸인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타리공증사무소’ 에가서 공증을 받아 놓았다.
외국에서 살려면 빠져나갈구멍 은 꼭 만들어 놓아야 한다.
뭐하나 잘못되서 강체추방 이라도 되면 얼마동안 그나라에 입국이 거절 된다.
다음날 아침에 바로 경찰서 로 가서 모든서류 를 보여 주었다.
담당자가 한참을 훌터 보더니 경쾌하게 큰소리로
'O.K. No Problem Sir !..란다.
나는 이사건이 누구의 소행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물증이 없으니 나혼자 덮어두고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흐른 어느날, 한국에서 루마니아 에 학회 가있어 참석차 오신 손님이 계셨는데, 이상한 카메라를 들고 와서는 사진을 찍자마자 바로 보기도 하고 저녁엔 컴퓨터에 저장한다고 하면서 일을 하고있었다.
그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디지털 카메라’ 라고 하였다.
그동안 나에겐 젊어서 배탈 때 싱가폴에서 면세로 장만한 CANON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디지털 카메라는 처음 접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다보니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후로는 오는 손님마다 이걸 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었다.
마침 유학생 ‘박주영’ 군이 한국을 다니러 간다기에 소형 니콘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사다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나는 그때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소유 하게 되었다.
처음엔 사용할줄을 몰라서 필름 카메라처럼 작은렌즈에다 눈을대고 찍으니 눈만 찍히는 웃지못할 해프닝 도 있었다.
그때 유행하던 ‘싸이월드’ 에 사진도 올리고 하였는데
다른걸 하게 되면서 그때 싸이월드 에 올려놓았던 많은 사진들이 없어져 버렸다.
이 디지털 카메라의 단점이 어디에 저장해 놓지 않으면 메모리용량이 다차면 사진을 지워야 한다는점인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없어진 사진들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그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컴퓨터에 모든 사진을 저장해 보관하다가,
세월이 지나 용량이 부족하다보니 이제 는 외장하드를 사서 거기에다 모든자료 를 보관하고 있다.
2006년도 에는 고)노무현대통령 이 루마니아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당시 루마니아 ‘버세스쿠 대통령’ 은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루마니아 해양대학 을 졸업하고 선장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하여 부카레스트 시장이 되더니 , 루마니아 대통령까지 당선이 된 사람 이었다.
우리나라 는 대통령이 한번 외국순방길에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 되어야 하고 또 현지국가 에서는 현지국가 대로 교민사회도 사전준비를 해야하는지 그때 알았다.
루마니아는 교민숫자 가 적다보니 각분야 에 동원되어 도와줄사람이 없어서 좀 애를 먹은 것 으로 알고 있다.
하여튼 대통령이 머물던 '메리엇트호텔' 로비 에 매일 아침 출근해
가보면 루마니아말 좀 한다 하면 교민,선교사,학생 까지 모두 총동원 되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루마니아 헨리코안다 국제공항 활주로 가 우리나라 대통령전용기 가 착륙하기엔 활주로가 좀 짧아서 인원 및 화물을 최대한 줄여서 착륙을 했던걸로 기억이난다.
그때는 우리나라 한수원 에서 루마니아 체르나보더 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을려고 많은 시간과공 을 들이고 있는중 이었는데 아마도 그게 성사될려구 대통령이 오나보다 라고 우리교민들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게 성사되면 교민들은 더불어 먹고살길 이 조금씩은 생길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떠난뒤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하물며 양국 간에 교민들 비자문제 도 거론했다는데 ,
루마니아정부 는 전과 동일하게 변한게 없었다.
결국은 잔치만 요란했지 모든게 전과동 이었다.
‘기대가크면실망도크다’ 라는말이 딱 맞는 순간 이었다.
또한 대사관 의 모직원 은 대통령 이 떠난뒤
자기가 호텔방마다 쓰레기통 검사 를 하고 다녔다고
자기의 업무적인 예기를 공공연히 자랑처럼 보는사람마다 떠들고 다니기도 하였다.
사람이 공직에 있으면 말도 할말 안할말 가려서 해야 한다.
조물주 가 인간을 만들때
'눈' 은 두개요, '귀' 도 두개인데,
'입' 은 왜 하나 만 만들었을까?.......
그이유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하라고 두개씩 만들어 놓은것이고
입 은 말을 적게 하라고 하나 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에 입도 두개 였다면 어땠을까?...
이쪽입은 이말하고, 저쪽입은 저말 하면 , 듣는사람은 어떤게 진짜인지 헷갈릴것이다.
사람은 말을 적당히 해야지 말이 많으면 실수 를 하게 되어 있다.
루마니아 사람 들은 원래 천성적 으로 참 친절하고, 놀기좋아하고, 큰소리 안내고 소곤소곤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차우체스쿠 때문에 지도자를 잘못만나서 나라가 가난해서 그렇지, 어디 나무랄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차우체스크 시절에 선진유럽에서는 짚시들을 한때 추방한적이 있었는데 ,
그때 이 ‘꼴통’ 들을 모두 ‘어서오세요’ 라고 받아들인 나라가 루마니아 차우체스쿠 였다.
그이후로 루마니아는 짚시들의 천국이 되었으며 도둑과소매치기 등 사회적으로 골치아픈 나라가 되었고 , 치안이 않좋다고 국제적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 하였다.
그러다가 2007년 루마니아가 EU 에 가입하게 되면서, 서유럽과 자유왕래 가 가능해 지면서, 루마니아 짚시 들이 서유럽 관광지 로 관광지로 대거 몰려 나갔다.
이렇다보니 지금은 서유럽 관광지에서 루마니아 거지짚시 들을 쉽게 만날수가 있다.
이들은 그곳에서도 역시 구걸과소매치기 로 생계를 이어갈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집에다가 돈을모아 송금 까지 하고 있다.
부카레스트 시내 사거리에 신호등이 걸려서 잠시 정차중이면 여지없이 이디서 기다리고있던 짚시꼬마 녀석들이 차앞유리 로 우르르 몰려 와서는 팻트병에 담아온 맹물로 앞유리를 순식간에 닦는다.
그리곤 손을 벌리면 동전몇잎 을 쥐어주기도한다.
담배 한까치 주는사람,
아예 아무것도 안주는 사람,
별사람 이 다있다.
짚시들 은 조혼 을 하고 다출산 을 하는데 어려서부터 부모들은 생계를 위하여 어린애들에게 이러한 구걸 같은걸 일부러 훈련을 시키고 있는게 현실 이다.
부모없는 짚시아이들은 추운겨울철엔 온수파이프 가 지나가는 지하 터널에서 남녀 가 혼숙을 하며 단체로 생활 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뽄드흡입 등 가장 못된짓만 골라 하는데 누가 통제 하는 사람도 없다.
루마니아 초기정착 시절에 나도한번 은 짚시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
부카레스트 북역 에서 공중전화 카드 를 매점에서 구입하여 전화를 걸려구 공중전화 로 걸어 가고 있는데 웬청년이 친절하게 다가오더니 자기가 걸어줄테니 전화카드 를 달랜다.
난 아무 생각없이 카드 와 번호를 주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도로 와서는 이카드 는 다 사용한 빈카드 라 전화를 걸수가 없단다.
무슨소리냐 방금 저매점에서 샀는데...
그럼 이거 가져가서 매점에 물어 보란다.
매점에가서 물어보니, 그청년이 바꿔치기 한거란다.
나와보니 그놈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현장에 없었다.
루마니아 짚시들의 주 사업 아이템 은 고철 수집 인데
특히 도로의 맨홀 은 주 타겟이다.
밤에 아무도 없는 차량통행 이 뜸한 외곽지역의 도로들은
짚시들이 마차를 몰고와서는 맨홀을 잽싸게 싣고 가버린다.
그래서 시내도로 보다는 외곽도로 를 주행하는 운전자 들은
항상 맨홀 을 지날때는 여부 를 확인하고 조심운전 해야한다.
맨홀이 없는데는 누군가가 나무가지 를 꺾어와서 맨홀구멍 에다 꽂아놓는데
이표시는 맨홀이없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난처음에 루마니아 왔을때 도로에 무슨 나뭇가지가 저렇게 많이 꽆혀 있나 궁굼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집시들이 맨홀을 훔쳐가서 맨홀이 없다는 표시라고 현지인이 알려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한번은 무심코 커브길 에서 달리다 맨홀구멍에 차가 빠진적이 있었는데
앞바퀴 가 빵구가 나서 타이야를 교체하고 다시 주행을 한경험 이 있다.
이렇게들 루마니아 짚시들은 못된짓을 밥먹듯이 하며 불쌍하게들 살아가고 있는게
이곳 루마니아 짚시세계 의 현주소 이다.
루마니아 에는 ‘꾸렌트’ 라는 이상한걸 믿는 풍습 이 있다.
공기가 귀를 통하여 몸으로 들어오면 안좋다고 하여
귓구멍에다 하얀 솜으로 틀어막고 다니는 사람들을 길거리에 많이 볼수가 있다.
난 처음에 이걸보고 루마니아 사람들은 귓병환자가 참 많은줄
오해를 했었다.
또한 집구조도 우리 한국은 창문이 있는 반대쪽에도 창문이 있어 실내 환기 가 아주 잘되지만,
루마니아 의 집구조는 창문 이있는 반대쪽 에는 실내공기가 맞바람 쳐서 빠져나갈수 있는 창문이 없다.
이런구조 는 아파트 보다는 단독주택으로 갈수록 더 심하다.
밖에공기 가 실내로 들어와서 반대쪽으로 흘러나가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하여 이또한 안좋다고 믿고 있다.
택시를 탈때 운행중에 유리창 이라도 열려고하면 ‘꾸렌트’ 를 믿는 택시기사 는 절대 창문을 못열게 한다.
장거리 좌석제 국경을 통과하는 리무진버스 는 그나마 덜한데,
시골로 다니는 완행 미니버스 같은 경우는 운행중에 여름철에 에어콘 이 있어도 틀지 않으며,
창문도 열지 않으니 차안은 얼마 안가서 바로 찜통으로 변하면서 사람한테서 나는 쾌쾌한 땀냄새 가 머리가 아플 정도다.
그래도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 이 없다.
루마니아 현지인 의 집을 방문해 보면 이건 더 기가 막힌 집들이 많다.
오래된 집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한데
실내 환기를 안시키다보니 공기가 실내에서 정체되어
사람 몸에서나, 옷에서나, 그동안 온갖 반찬 냄새로 찌든 쾌쾌한 냄새가,
바닥에 깔린 카페트 냄새 까지 더하여 코를 찌르는집 이 시골로 갈수록 많다.
여름 장마철에 개 키우는집 에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개비린내까지 나서 헛구역질이 나서 참다참다 도저히 얼마 못버티고 바로 나와 버린적도 있었다.
정말 희한한 풍습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풍습 은 저래도
루마니아 원래민족 은 놀기 좋아하고 심성은 착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다.
그리고, 루마니아는 홍수가 봄에 난다.
그이유는, 우리나라처럼 여름에 장마가 진다 든지 하는게 아니라,
루마니아 는 겨울에 눈이 엄청 오는데,
겨우네 쌓였던 눈이 봄이되면 한꺼번에 녹으면서
이 눈 녹은물 이 강으로 한꺼번에 흘러들어 하류에서는 종종 홍수가 나곤 한다.
또한 눈이 녹기 시작하면 눈이 많이 쌓인 지붕 밑에는 절대로 주차를 하면 안된다
또 사람도 처마밑을 지나갈땐 조심 해야한다.
왜냐면...푹해진 날씨에 지붕 의 눈이 녹으면서,
지붕에 쌓였던 눈덩이가 갑자기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지는데 이때 사고가 많이난다.
그리고, 루마니아 는 개팔자 가 상팔자 인 나라이다.
주인없는 떠돌이 개 들이 공원이던, 동네방네 구석구석 이던, 없는데 가없다.
문제는... 이놈들이 낮에는 온순한거 같은데 해가넘어가면서 이른새벽까지 주로 밤에는
떼를지어 다니면서 무서운 야수로 돌변한다.
야간엔 이놈들을 아주 조심해야 한다.
떼를지어다니면서 한놈이 멍멍 짖기시작하면 주위에있던 다른놈들이 함께 몰려와서 가세 를 한다.
우리나라 는 보신탕 문화가 있어서 개를 알기를 우습게 아는데
루마니아개 들은 우리나라개 하고 다르다. 아주 무서운놈들이다.
떠돌이개 에게 물리는 사고가 자주 발생 하며 물려죽는 사람도 있다.
초창기 루마니아에 살때 인근 '띠네레뚤루이 공원' 에 새벽운동 나갔다가
개들에게 포위되어 오도가도 못하고 같혀버린적 이 있었다.
멎모르고 공원에서 새벽조깅 을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개새끼 한마리가
뒤에서 따라오면서 멍멍짖어대는가 싶더니
조금있으려니 여기저기 사방에서 멍멍 짖어대며 몰려오는것이 아닌가?...
한 열댓마리는 되는놈들이 나를 포위하고 금방 물것같이 대드는데
앞엣놈 쫓으면 뒤엤놈이 대들고 뒤엤놈 쫓으면 앞엤놈이 대들고
마치 동물의 왕국 에 나오는 아프리카 들개 들이
여러마리 가 떼를 지어 먹이를 공격하는장면 과 똑같았다.
그때 내옆을 지나가던 어떤 아줌마 가 나를 구해 주었다.
내가 개들에게 포위되어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까
그아줌마 가 오더니 들고있던 비니루 봉지에서 빵을 꺼내어
개들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빵조각 을 하나씩 던져주니까
개들이 그 빵 주워먹으러 그쪽 으로 모두 가는거였다.
그리고는 나보고, 뛰지말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개들하고 눈마주치지말고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가라고 일러 주워서
그때 위기를 모면 하였다.
그 현장에서 탈출하느라 정신이없어서 그아줌마 에게 고맙다고 인사도 못하였다.
멀리서보니 나에겐 그렇게 험악하게 으르렁 거리며 짖어대던놈 들이
그 아줌마 에겐 꼬리 를 흔들며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런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떠돌이 개들 다루는법 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후로 공원에서 새벽조깅 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마니아 관공서는 무슨 업무시간 이 관공서마다 왜 다른지 지금도 이해가 안간다.
관공서 일 보러갈땐 확인 하고 가야지 요일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 무작정 가면
십중팔구 헛걸음치고 되돌아 올때가 많다.
처음 루마니아 초기정착 시절에 무슨일 보러 갓을때인지 지금생각하니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건물 입구에 가니 사람들이 긴줄을 서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봣더니 바로 담당자 에게 바로 가는게 아니라,
건물입구 에서 자기볼일 보는 부서에 인터폰 구내전화로 알리면
안에서 사람이 나와서 한사람씩 안으로 데리고 들어 가는거였다.
나도 한참을 기다렸다 들어간적이 있었는데,
예전 사회주의 때 의 관공서 업무방식 이 그때 까지도 일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루마니아 는 오랜 세월동안 사회주의 통치 에 물들어 있다보니
나라가 밥을 먹여주던 시절에 대한 인식이 젖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바쁜게 없고 공무원이든 일반인 이든
매사에 일도 열심히 안하고 느릿느릿 거북이 걸음이다.
어딜가나 줄서서 기다리는데는 아주 도가 터서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인다.
시골같은데서 일반 서민들이 새로 집짓는걸 보면 참으로 재밋다
이번달 돈생기면 벽돌 한줄쌓고, 다음달 돈생기면 또 몇줄쌓고,
뭐 바쁜거 없이 집을 짓는다.
그러다 보니 완공하기 까지는 몇년씩 걸린다.
일단 지붕 이되고 나면 이사가서 살면서 계속 또 나머지 집짓기를 이어간다.
시골은 가축을 많이 기른다.
소는 우유를 공급해서 치즈를 만들고, 말이 밭을갈고 구루마 를 끌고 농사를 짓는다.
여름철엔 아침이면 동네소들을 한 목동이 책임지고 풀밭으로 동네소떼를 몰고 나갔다가
저녁때쯤엔 다시 동네로 돌아오는데, 동네입구 까지만 몰고오면 , 집주인들은 대문만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후 소들은 목에걸린 쇠방울 을 달랑 거리면서 각자 자기집을 용케도 알아서 스스로 찾아간다.
시골사람들은 또 얼마나 순박한지 모른다
시골집에는 대문옆에 집집마다 나무로 된 간이의자 를 만들어놓고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주로 앉아있다.
그의자에 앉아서 이웃간에 담소도 하고 지나가는사람들 을 의미없이 쳐다보기도 한다.
한번은 시골길 지나가다가 닭이 마당에 많이 있는집을 발견하고는 교민에게 들은 예기가 있어서
한 할머니에게 저 닭한마리 살수 있냐고 하니까. 안된단다.
다 이유가 있었다.
집안 행사때 즉 누구생일때 몇마리. 연말연시 크리스마쓰 휴가때 몇마리. 등등 사용할 닭의 숫자가 다 정해져 있어서 안된단다.
그러더니 옆집가서 뭐라뭐라 하더니 그리로 오란다.
그래서 그리로 가서 토종닭 한마리 살려는과정에
주인 할머니 말씀이... 여기서 잡아서 아예 삶아 줄수 있다고 하는게 아닌가?
그럼 그러자고 하여 즉석에서 토종닭 한마리 잡아서 삶아먹으면서
주인 이 담근 루마니아 전통술 '쭈이커' 도 한잔 주길래 얻어먹고 오기도 하였다.
집에서 놓아 기르던 닭이라 맛이 있었다.
할머니 가 원하는 금액에 팁을 더 드리고 왔다.
만약 ,우리나라 시골 같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지나가던 외국인이 처음보는 할머니 에게 대뜸 한다는소리가
'할머니! 닭한마리 좀 잡아줄수 있읍니까?, 라고 할머니 에게 묻는다면...
그할머니는 '세상에 별놈 다보겄네' 라며 그외국인 을 쳐다도 안봤을 것이다.
초창기엔 바빴던 여행사일이 시간이 흐르면서 위에언급한 여러가지 사정 으로 인하여
이제 뒷전으로 밀리고,
집사람은 게스트 하우스 에
나는 루마니아 에 진출한 한국기업체 의 뒷바라지 에 바쁜 나날을 보냈다.
여러 기업체가 있었지만, 그중에 대표적 인건..
한국의 '두산중공업' 이 루마니아 크베르너 주단조공장 을 인수를 하면서
‘DOOSAN IMGB' 로 출발을 한거였다.
제강. 주조. 단조. 가공. 등 꼭 한국 두산중공업 이 하는일 그대로 운영이 되었다.
이에따라 두산중공업 출장자들 뿐만 아니라, 외주협력업체 등 많은분들이 루마니아에 오면 우리 벧엘민박 을 이용을 하였다.
이때 아파트에서 3층 단독주택 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집을 임대 하면서 집주인으로 부터 특별히 인수 받은게 있는데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때가 되면 누군가가 와서 , '개스사용메타기' 를 돌려놓고 가는 사람 이 있었다.
그러면 그사람에게 몇푼을 쥐어준다. 철저히 비밀이고 연락처도 안알켜 준다.
우리는 개스비 가 적게 나오니까 좋겠지만,
국가적 으로 봐서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손해 가 많을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에서는 나 어릴적 옜날에 '전기메타기' 를 이런식으로 손을 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루마니아 에서는 그때도 공공연히 이런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만큼 그때는 루마니아 사회 가 전반적으로 부정.부패. 가 심해서
하기쉬운말로 '안되는일도 없고, 되는일도 없다' 라고 생각하면 딱 맞는 표현 이었다.
교통경찰 은 또 어땠는가?
지나가는차 괜히 세워놓고, 트렁크 좀 열어봐라,서류좀보자, 는 등 생트집 을 잡는다.
그럼 또 몇푼을 쥐어준다.
관공서 일보러 갈땐 의례 '촌지' 를 가져가면 일이 쉽게 처리가 된다.
받는사람 은 미안한 마음 없이 당연한것처럼 받는다.
루마니아 는 우체국안에 세관직원 이 상주 를 하는데
한국에서 무슨 물건이 와서 우체국에 찾으러 갈때면 이 세관직원 이 먼저 검사하고 세금을 결정한다
그러면 세금없이 잘좀 봐달라고 또 '촌지' 를 준다.
그때는 루마니아 가 전반적으로 먹고살기 힘든 가난하고 후진국 이다보니
사회적으로 이런 부정.부패가 만연 한것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서....
벧엘민박 이 잘된다고 소문이 나니까, 이번에는 또 민박집 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을 하였다.
‘니모민박’ ‘로뎀민박‘ ’생트민박‘ 그리고 ’KOREA HOUSE‘ 와 ’다미식당‘ 등 이 2곳의 한국식당 에서도 민박손님 을 받았다.
심지어 ’김ㅎㅅ‘ 이라는 선교사님 께서도 또 자기네가 사는 교회사택 에다 민박손님 을 받기도 하였다
난 처음에 목사님, 선교사님 이라고 하면 정말로 존경을 했었는데.....,
루마니아 살면서 어쩔수없이 보게된 그들 의 삶을 보면서....
또한 마음의 상처 를 좀 받으면서....
그동안 쌓은 신뢰가 무너지고 많은 실망을 금치 못하게 되면서
호칭 뒤에 붙는 '님' 자는 붙이지 않기로 하였다.
성도 와 불륜관계 를 저지르고 있는 한인교회 목사가 있다고
한국에있는 나의귀에 까지 전달이 되었다
(참고로, 훈데니 지역에 새로 건축한 3층 교회건물 은 현지인에게 매각되면서 예배처소 가 없어졌고,
매각전에 훈데니 3층교회 에서 나와서 따로 예배 를 드렸던 교인 들은,
이사건 이후 예배를 위해 모이지 않는다고한다
그리고, 물의 를 일으켰던 목사는 프랑스 로 걸음아 나살려라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루마니아 '아멘한인교회' 는 없어져 버렸다 )
아무튼......다시돌아가서...
교회 를 사고팔고 하지를 않나...
허가도없는 가짜여행사 나 차려놓고
교민에게 피해 를 주지 를 않나...
민박 을 차려서 돈좀 벌어 보겠다고 교민에게 피해 를 주지를 않나.....
교회 팔리면 주겠다고 3천유로 를 빌려 가놓고는 교회가 팔렸는데도
지금까지 안주고 있지 를 않나...
에구....
이또한 어쩔것인가?....
목사나 선교사도, 다같은 사람인데...
돈이 있어야 밥을 먹고 살지....
나는 예수같은 마음으로 억지로 이해를 해보고 만다.
참고로 아래 사진은 루마니아 '아멘한인교회' 건물 의 변천사 이다.
이 많은 민박중에서 벧엘민박이 시설이 제일로 좋다보니 ,
그래도 두산중공업 에서는 손님들을 다른데로 안보내고
우리 벧엘민박 을 꾸준히 그리고 끝까지 이용해 주셔서
지금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협력업체들은 자동으로 우리 벧엘민박 을 이용을 하였다.
벧엘민박 이 손님 들로 다 차서 방이 없을 때 다른민박 으로
손님들이 가곤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이 흘러 한국의 두산중공업 과 협력업체 에서 파견오는 출장자 분들의 숫자가
이제 서서이 줄어들기 시작을 하였다.
사정이 그렇게 돌아가다보니, 이제는 높은임대료 에 손익분기점 을 계산해 보니
마이너스를 찍게 되었다.
더 이상 한두명 씩 가뭄에 콩나듯이 손님을 받아봐야 시간이 갈수록 손해 였다.
이제 또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았다.
그당시 민박들이 너무많이 생겨나 있는 상태였었고
사정이 그렇다보니 이제 민박 도 더 이상 메리트 가 또 없어져 버렸다
집사람과 고민 끝에
우리가 제일먼저 민박을 시작했지만...
이제 민박업계 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실을 받아드리기로 하고
우리가 또한 제일먼저 민박을 접기로 집사람과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헤라스트로 공원 부근 의 신축 아파트 로 이사를 하였다.
부카레스트 인근에는 골프연습장이 두군데,
그리고 헤라스트로우 공원내 에 9홀짜리 골프장이 한군데 가 있다.
그때는 할 일이 없으니 시간이 좀 나길래 모처럼 의 여유를 즐기며
헤라스트로우 공원 내에 있는 9홀짜리 골프장 에 가서 골프나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의 ‘제일기계’ 라는곳에서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고 연락이 왔다.
부카레스트 에서 약 1시간 가량 떨어진 Pitesti 지역에 있는
루마니아 DACIA 자동차 공장에 2400톤, 800톤, 프레스를 설치 해야 하는데
좀 도와 달라고 이야기를 하는거였다.
따져보니 조건이 좋아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몇일후 회신을 주었다.
그리하여, Pitesti 에 3층건물을 임대 하여 출장자 전용숙소 로써
벧엘민박 을 다시 운영을 하였다.
여기서는 제주도 미주친구 명희가 부엌 주방장 으로써 손색없이 요리를 아주잘 해주어서, 출장자 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얼마나 자랑을 했던지 루마니아 에 서로 출장 올려구 경쟁이 치열했다는 뒷예기도 들었다.
숙소, 자재, 인력, 장비, 통역, 등 이 모든걸 하자없이 깔끔하게 뒷바라지 를 해주었다.
이렇게 무사하게 프레스설치 완료후,
시운전 테스트 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하고,
무사히 예정 계획표 대로 프로젝트를 잘 마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골프나치고 집에서 좀 쉬고있는데
‘제일기계’에서 또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엔 태국 ‘GM THAILAND' 에 프레스를 설치 해야 하는데 태국좀 가서 일좀 봐 달란다.
난 태국어도 모르고, 태국 지리도 몰라서 가기가 좀 그렇다고 하니까, 걱정 말란다 나를 위해서 한국말 한국사람보다 더 잘하는 태국사람 통역 하나 챙겨놨으니, 골프채 랑 짐챙겨서 준비 하고 있다가 비행기표 예약하면 바로 날라 가란다.
이렇게하여 루마니아 에서의 인연이, 태국 으로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 태국 프로젝트 가 끝나면 나는 다시 루마니아 로 돌아갈거라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집사람은 루마니아 에 홀로 남겨둔채
11년간 정 들었던 교민 들과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2010년 07월18일 태국행 비행기 에 몸을 싣게 되었다.
그밖에,
SK건설 에서 루마니아 Pitesti정유공장 PETROM S.A. 에 탈황설비 공사때 라던지,
시비우 지역에 한국의 SPORTEC 회사 에서 운영하였던 원목공장 에서 근무할때는
이땐 디지털 카메라가 없을때여서 찍어논 사진 자료 가 없어서 많은 아쉬움 이 남는다.
제17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