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하면 나에게는 결코 낯설지 안코 웬지 포근한 반가운 도시 이다.
배를 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부산'
젊어서 내가 원하여 배를 타기 시작하여, 중간에 잠시 육상근무 를 하였지만, 지금까지 배를타다보니 부산 과의 인연 은 아직도 진행형 이다.
오늘은, 그동안 짬짬이 인터넷을 뒤져 모아두었던 부산항 의 변천사 희귀사진 자료 들을 정리하여 포스팅 을 해볼까 한다.
영가대 - 1614년 경상도관찰사 권반(權盼)이 설치했고 .1617년 오윤겸이 영가대에서 처음 일본으로 출발한 후로.
(조선통신사 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기점이 되었다)
부산포 '초량왜관도' - 18세기 초량 왜관선착장(현 롯데백화점 부근)은 대마도 비선이 무역을 위해 200여 년이 넘도록 빈번히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 밑에 있는 소나무숲은 용두산 , 위에 보이는섬은 영도, 좌측에는 오륙도 를 각각 표시하였다 - 부산화가 '변박' 이 43세때 그린그림. '변박'은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도 다녀왔다 )
콜로라도호 - 18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조선해변에 나타난 이양선(異樣船). 사진은 개항 전 조선원정에 동원된 미 아시아함대 콜로라도호
사우스 아메리카호 - 10여 일간 용당포에 머물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한동안 '며리계'라는 깊은 인상을 심어준 미국 고래잡이어선 사우스 아메리카(South America·616t급)호(1853년)
부산항 해도 - 1859년 영국인 존 워드 함장이 측량, 제작해 부산항을 초량해(Tsau-liang-hai)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처음 알린 부산항 해도.
일본인 사진사 카와타 키이치가 촬영한 1876년 개항 직전의 부산항
제1대 부산해관장. 넬슨가족(1880년)
제2대 티 피어리(T. Piry) 부산해관장 관사에서 기념촬영. (왼쪽부터 박기종 경무관, 김학진 동래부사, 해관장, 통역관. 1885년)
1887년 서관(西館)이라 불리던 일본인 거류지 전경. 왼쪽언덕 이 용두산. 우측 솔숲 이 지금의 국제시장 부근.
(T.Priy 2대 부산해관장 촬영)
1887년 개항 이후 부산항은 외국군함이 가끔 찾아들어 마치 무력시위의 결전장과 같았다. 사진은 1887년 9월 복병산 해관장 관사에서 본 영국군함의 항내 정박 모습.
부산해관 선착장. 뒤에 높은 건물이 당시 일본영사관이다.(1890년경)
청나라에서 건너온 '헌트' 제3대부산해관장(원내) 와 직원들(1890년)
부산지역 영화인이 만든 개화기 헌트 부산해관장 딸의 사랑 이야기 '리즈 헌트'의 한 장면.
(실제로 해관장 딸이 한국인 정원사 의 아이를 임심하면서 난리가 났고, 해관장가족은 청나라로 돌아갔다.)
부산항지도(1894년) - 영도 를 'DEER ISLAND=사슴섬' 으로 표기 하였다.
부산해관 '린드홀름' 보좌관이 1895년 4월 9일 총세무사 앞으로 보낸 사냥개 피해보상 관련 공문
19세기 초 대마도에 표착한 '조선인어부 일가' 가 한가롭게 바둑을 두는 모습(독일인 의사 시볼트의 책 '일본' 중에 수록).
1899년 조선에 와서 대구에 머물던 미국인 사보담 목사가 1900년 부산으로 발령받아오는 길에 그의 부인 소유 피아노가 나무상여에 올려진 채 현 중구 동광동 5가에 있던 한 병원 앞으로 옮겨지고 있다.
부산 영선고개 가는길(1905년)
지금의 광복동 일대를 지나가고 있는 순종의 어가 행렬을 담은 사진엽서
1922년 4월 22일 영친왕 가족이 조국을 찾을 때 타고 왔던 신라환(新羅丸·3024t). 이 배는 1945년 5월 25일 태평양전쟁 당시 어뢰에 접촉돼 침몰됐다.
고려호는 본래 미군 기뢰에 의해 적기(부산 남구 감만동 일대) 앞바다에 침몰된 일본 화물선 화포환(和浦丸)인데,
해방 뒤 인양·수리돼 우리나라 국적선이 됐다.(1952년)
1951년부산광복동거리
임시수도 시절 광복동 거리 (1951년)
부산.서구 부민동 임시수도기념관
6·25전쟁 당시 군수물품이 하역되고 있는 부산항 제2부두의 모습.
부산.1954년
부산 우암포 에서 소를싣는 일본 의 가축전용범선(1909년)
부산항(1910년) 제1잔교 의 선박계류장
부산항(1903년) - 영도는 한적한 곳으로서 개항 이후 급속히 발전했다. 개항 초 부산항에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임시무역장이 설치되기도 했다.
부산항(1900년대)- 용두산 과 영도
부산항(1930년대)
부산항(1954년)
부산항(1954년) 당시 제3·4부두 전경. 중앙부두 쪽에는 제대로 매축이 되지 않아 물웅덩이가 남아있다
부산항(1960년) 부산항 제4부두에서 부산전력부두발전소로 간판을 달고 부산을 비롯하여 영남지역 일대에 전력을 공급한 발전함 레지스탄스호
부산항(1958년)
부산항(1950~60년대) 선박수리와 어항으로 유명했던 부산 영도구 대평동 도선선착장 부근
부산항(1960년)-제2부두모습
부산항(1964년)
부산항(1970년)
부산항(1980년대)
부산항(1980년) - 자성대 컨테이너부두
부산항(2009년) - 제3,4부두
안진상 감독의 '밀수금지' 계몽영화 '여명黎明' 의 한장면 (1948년작)
1950년 중반 대마도 이즈하라항 의 모습. 포구 에 접안된 선박은 우리나라에서 건너온 소형쾌속 밀수선 이다.
한때 '나이롱선원' 일명 '밀수꾼' 들이 승선하기도 했던 1960~70년대 대일 '활어수출선'.
밤이 되면 일본행 밀항선 으로 둔갑하곤 했던 어선들.
'조도' 및 '영도 동삼동 해안' . 당시 에는 인적이 드물어 밀수품양륙 최적의 인기 장소였다. (1953년)
1952년 해상밀수 근절을 위해 전시예산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80t급 감시선 붕양호. 전후에 10t급 '독수리호' 와 편대를 지어 모선 역할을 담당했다.
1968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납치돼 한일외교 문제로 비화됐던 부산세관 소속의 10t급 목선인 감시선 독수리6621호
1964년 당시 수입 금지된 청어가 부산항을 통관하지 못하고 보관됐던 옛 부산시청 부근의 대한수산 냉동보세창고(당시 부산제빙회사).
'1965월광카바레 밀수사건' 을 계기로 '특공대 밀수'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사진은 '합동밀수단속반' 의 발족식 장면.
개항 140년의 부산항 최고 유물로 통하는 세관기중기. 부산세관 감시선계류장 입구에 있으며, 보관 상태가 좋아 지금도 가동 된다.
1934년 11월23일 영도다리 개통식
영도다리(1934년)
영도다리(1954)
영도다리(1966년)
동백섬, 조선비치호텔, 그리고 해운대 해수욕장(19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