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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의 자서전 제15부

김홍열 의 블로그 2020. 6. 24. 15:38

불가리아 는 언어 가 다르고, 또 끼릴문자 를 사용하는 국가이다보니, 영어 만 배웟던  나에겐 다소  생소하여 일단 제외하고 루마니아 에서 살아보기 로 최종 결정 을 하였다.

루마니아 의 수도 BUCHAREST(영어표기), BUCURESTI(루마니아어표기),

에 거주하는 한인들 을 만나서 여러 정보 들을 우선 파악 을 하기로 하였다.

당시 루마니아 에 거주하는 한인들 은 한 200여명 정도 되었고,

지상사 주재원 및 가족 이 약 50%, 선교사 및 가족 이 약 40%,

그리고 순수 자영업 으로 거주하는 교민 및 유학생 은 약 10% 정도 밖에 안되었다.

업종을 보면..식당업,부동산업,골재장운영, 등 몇세대 정도가 자영업 으로 거주 하고 있었다.

당시 루마니아 의 경제수준 을 볼땐 기회의땅 이기도 하였다.

한국엔 IMF후유증 으로 경제 가 휘청거리고, 이제 이낯선땅 루마니아 에서 살아보기로 결심을 한이상,

어떻게든 이 난국 을 헤쳐 나가야 하였다.

교민중엔 이씨형제 가있었는데....

동생은 이미 골재장 을 운영하고 있었고,

형이라는 사람도 골재장 을 Open할려고 투자자 를 찾고 있는 상태였었다.

나는 형이라는 사람과 만나서 수차례 회의를 한결과, 나는 중장비 쪽을 가져와서

함께 일을 하는걸로 가닥을 잡았다.

조건은.

1.장비임대료 월4,000달라 에,

2.장비를 사용하다가, 구매희망자 가 나타나면 이윤을 남기고 매각을 하고

다시 한국에서 장비를 가져오는걸로 가닥을 잡고,

3.한국장비를 가져와서 자기가 아는 '요르다께' 라는 현지인 의 주유소 주차장 에 진열만 해놔도 한국산 중장비를 서로 살려고 할거다.

4.그리고 골재장을 하면서 생긴 웅덩이 는 물고기를 잡아다 넣어서,

유로낚시터를 하면 된다.

 

라는게 그 형이라는 사람의 의견 이었다.

암튼...

장비를 투입하여 한달 임대료를 받으면 살아가는데는 별문제가 없을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검증 된 사항 들은 아니었지만, 어쩔수없이 그의말을 믿을수밖엔 별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하여 나는 한국에서 중장비를 띄우고 ,

루마니아 현지에선 골재장 허가준비 관계로 바쁘게 돌아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장비가 흑해 에 있는 '콘스탄챠항' 에 도착 을 하였다,

장비 를 통관하여 부카레스트 인근 골재장 현장 에 도착을 시키고

골재장도 정식 Open 을하여,

한인교회 목사를 초빙하여 개업예배도 조촐하게드렸다

그리곤 골재 를 생산 하여 판매를 하기 시작 을 하였다.

그렇게 잘 돌아가나 싶었는데 , 어느날 뜽금없이 

한국에서 투자자 라고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약속이행 을 하라고 하면서 언성을 높이고

시끄럽게 떠들더니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간후 여러 가지 를 어떻게 된거냐고 그 형이라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제야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기서 잠깐 ‘동업’ 이라는 단어를 한번 생각을 해본다.

 

사업 아이템 은 있는데 가진돈 이 없다보니,

감언이설 로 돈있는 투자자를 찾아서 함께 운영하는게 동업 이라고 생각한다.

‘망해봐야 투자자는 망해도 아이템을 제공한 사람은 망할게 없다’ 고 생각한다

자세한예기 를 들어보니, 복잡하게 인간관계 가 얽혀 있었다.

 

여기서 형이라는 사람을 (A) 라고 표현을 하겠다.

(A) 는 (B)라는 사람을 루마니아에서 우연히 만나, 골재장운영 을 둘이 한번 해보기로 하고 투자자를 찾는다.

(B) 도 가진돈 이 한푼도 없으니, 자기 매제인 (C)를 끌어 드린다.

(C) 는 현금을 계속 지원 을 해준다

 

루마니아 현지에선 운영자금이 더 필요하다, 뭐가더 필요하다

하며 게속 더 송금해줄 것을 요구를 한다.

 

(C) 는 자금 의 한계를 느끼고 더이상 보내줄 돈 이 없다보니,

자기친구 인 통일교 장로 인 (D)를 끌어 들인다.

 

(D) 는 사업계획서 를 만들어서 보내라고 하여, 아래의 계획서 를 만들어 보낸다.

아래의 자료는 당시 (B) 가 만들어서 (D) 에게 보낸자료이다.

 

정말로 정직하게 운영을 하여 ,이대로만 잘 되었다면 아마 모두 돈을 좀 벌었을것이다.

개업후 하루.이틀 시간은 흘러 처음 몇 달간은 내 장비임대료를 정상으로 잘 지급해 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임대료 가 밀리기 시작 을 하였다.

당시Korea house 라는 한인식당 이 있었는데 식사 는 여기서  외상으로 밥을 먹었다.

여기도 식대 를 못받았는지

그동안  밥먹은 식대를 받으러 사무실로 찾아와서 식당사장 이 난리를 치고 돌아 가기도 하였다.

 

도대체 들어온 수입이 어디로 지출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선 한국대로 처음에 책정된 배당금이 안들어온다고 난리를 치고,

급기야는 또  (D) 라는 사람이 이번에도 소식도 없이 루마니아에 와서는 또 난리를 치고 돌아갔다.

당시 (B) 라는사람을 우리는 전무 라고 부르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사무실에 출근해 보니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있었는데,

사람이 들어와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카지노 가 있다는건 알았지만,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그안 의 분위기는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인가 사무실에서 (A) 와 (B) 가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내용이 카지노에서 얼마를 잃었느니...얼마를 딷느니 하는 내용이었다.

그 대화의 빈도수가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한번은 어느날인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하길레 아무생각없이 이들을 따라나선 일이 있었다.

그져 Korea House에서 또 외상으로 소주나 먹으러 가려나보다 생각을 하고

이들을 따라 가는데, Korea House 쪽이 아닌 다른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들이 다다른곳 은 식당앞이 아닌 무슨 카지노앞이었다.

여기가 식당 이냐고 의아해 하니까...

들어가보면 안다고 따라 들어오란다.

입구에서 기도를 보는 거구들이 우리일행을 보자마자 아주 대환영을 한다.

여권을 맡겨야 들어갈수가 있다는데, 나는그때 여권을 안가져가서 들어갈수가 없었다.

여권을 안가져와서 없다니까, 같은일행이면 ‘No probleme' 이란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동안 영화같은데서 가끔씩 보기는 했어도 실제 와서 보니 신기하였다.

환풍기가 고장이 난건지 , 안돌리는건지, 담배연기 가 가득했다.

오소리 잡을 때 피우는 연기와 버금가게 담배연기 로 자욱했다.

중국인들 은 특히 놀음 을 좋아하는데,

각 게임장 테이블마다 중국인들로 차고넘쳐서 한가득 앉아 희희락락 이었다.

 

한쪽엔 뷔페식 으로 음식이 거창하게 차려 있었다.

우리는 우선 접시에 각종 음식을 담아와서 위스키 에 맥주 에 저녁을 공짜로 배불리 실컷 먹었다.

이것때문에 나에게 저녁 먹으로 가자고 한 것이었다.

여기선 위스키.맥주,담배 가 무한정 공짜란다.

술에취해서 많이 잃고 가라 이거겠지.

기발한 착상 이었다.

어렵게 번돈을 이런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거기앉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불쌍하게 보였다.

마약 과 도박 은 한번 빠져들면 끊기가 어려운 것이다.

부카레스트 시내 에는 당시 카지노가 2군데 있었는데,

손님 90% 가 중국사람들 이다.

이들은 3만명 정도가 루마니아에 살고 있는데,

‘유로파’ 라는 자기네들만 의 큰 도매시장 을 형성하여 값싼 중국제품을 루마니아 전국에 소매상들 에게 판매를 하고 있다.

여기서 벌은돈 을 저녁이면 또 카지노에 가서 탕진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할거 같으면.....

 

카지노 출입이 잦아지다보니, 회사돈을 손대기 시작하고,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없지

하다보니 회사는 당연히 맨날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다.

운영자금 이 필요하다고 한국 투자자에게 돈좀 더 보내라고 하면,

투자자는 투자자대로 자기배당금 이나 빨리 보내라고 오히려 난리를 쳤다.

 

결국, 이 골재장은 문을 닫게 된다.

그원인은 카지노에서 남의돈 을 자기돈 인냥 모두 물쓰듯 탕진한 것 이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A) 와 (B) 는 한국으로 철수를 한다.

(C)가 골재장을 인수하여 재기의 힘을 쏟지만, 그전에 골재장에 대한 경험이

없던 (C) 도 결국 문을 닫는다.

 

나는 홀로남겨진 장비를 이끌고 (A) 의 동생이 운영하는 골재장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부카레스트에서 한참멀리 떨어진 시골구석에 있는 현장으로,

한승용차에 다타고 새벽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생활이 시작 되였다.

그렇게 장비가 잘돌아가고 있나 했더니, 이번엔 고장이 나기 시작을 하였다.

유압펌프 가 고장나서 작동이 안되면, 한국 영등포 에있는 중장비 부속가게 에 긴급발주 하여 항공편으로 오는데 몇백만원이 훌쩍 없어졌다.

어느날인가 장비가 고장나서 현장에서 고치고 있는데...

여기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서 투자자 라고하는 한여인 이 한바탕 소동을 치고 돌아갔다.

 

여기서 , (A) 의 동생을 (X) 라고 하겠다.

사연을 알고본즉 여기도 복잡한 사연으로 얽혀 있었다.

(X) 는 한국에서부터 알고지내는(Y)를 데리고 루마니아에 들어온다.

(X) 는 (Y)를 골재장 현장소장 으로 않히고, 함께 골재장을 해보기로 한다.

여기도 돈이 없으니, (Y) 의 고모 를 투자자로 끌어 드린다.

그리고는,

(Y)고모는 투자한돈 을 못받으니,

잊을만 하면 루마니아에 (Y)고모 가 나타나서 소동을 치고 돌아갔다.

얼마후 이 골재장도 여기저기 해보더니 결국은 문을 닫게된다.

 

그리고 얼마후 (X)는 사금광산을 한다고 하면서 블로그 에 루마니아 사금 에 대해서 글을 올린다.

이 블로그 글을 보고 연결된 다른 투자자 들을 루마니아 로 끌어드리더니

이것도 결국 투자자만 돈을 날리고 문을 닫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론...

차마 창피한일인데 ....

그의부인 이 교회목사와 썸띵 을 일으켰다는소문이 루마니아 한인 사회에 알려 지면서

몇안되는 교민사회 가 발칵 뒤집힌다.

그리고 한국에있는 나의 귀에까지 전달이 되었다.

 

각설하고...

 

이제 나는 또다시 장비 와함께 홀로 남게 된다.

홀로 여러날을 고민하다가 이길은 내가 갈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장비를 처분하기로 결심을 하고, 헐값 으로 처분을 하게된다.

이제, 이 낯선땅 이역만리 에서 처자식 먹여살리려면 이제 무엇을 하여야 하나?..(DONDE VOY...)

여러날 고민 을 한다.

그리고 결정 을 한다

큰 자본 이 필요 없는 TRAEL AGENCY 를 해보기로 결심 을 한다.

그이후  이 여행사는 내가 루마니아 에서 살아가는데 발판이 되어 주었다.

 

‘BETEL TOUR’ 라는 여행사 를 창업 을 하고

루마니아 정부 의 공식 허가 를 득한 한인1호 여행사가 탄생 을 한다.

나는 이 BETEL TOUR 여행사가 창구역할 을 하여 주어서

많은 일거리 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당시 함께했던 이들 의 현재 의 근황 들을 살펴  보면...

(A) 는 한국에서 다른 투자자들 을 재모집 하여 다시 루마니아 로 돌아왔고

이번엔 골재장을 한게 아니라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B)는 한국으로 돌아간후 건강이 안좋아져서 지금은 세상을 떠났다고한다.

(C)는 루마니아에 계속 체류 하였고 훗날 한인회장 까지 지냈다.

(D)는 소식을 모르겠고.

(X)는 그후 부인을 데리고 한국으로 철수를 하였다.

(Y)는 루마니아여자 와 결혼을 하여 루마니아에서 정착을 하여 살아가고있다.

 

제15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