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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의 자서전 제10부

김홍열 의 블로그 2016. 12. 8. 21:05

반다르아바스 외항 앙카리지 에 도착 을 하니 이란 군인들과 함께 대리점이 올라왔다.

별도 의 소식이 있을 때 까지 무기한 앙카링 상태 로 대기 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본선 주위에 는 수없이 많은 배들이 이제나 저제나 접안 허가 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일먼저 행동에 옮긴 것이 청수 절약 이었다.

기관부 는 그동안 의 시간을 이용하여 Main Engine을 제외한 소소한 정비할 것들 이 있으면 이기회에 정비를 할수 있는 절호 의 기회 이기도 했다.

Main Engine 은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항상 24시간 S/B상태를 유지 해야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제 점점 무료해 지기 시작하였다.

낮에 선실 밖으로 나가면 대기온도 는 왜그리도 뜨거운지 숨이 턱턱 막혔다.

그나마 선원들이 위안을 삼은 건

해가 넘어가면서부터 는 주위가 어둑어둑해 지기 시작하면서 대기온도 도 내려가고, 무엇보다도, 환한 등불을 켜서 수면 가까이 내려 놓으면 이름모를 고기들이 배 주위로 모여들면서 낚시가 굉장이 잘 되었다.

이젠 낮엔 할 일이 없어지고, 밤만 되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낚시로 잡은 생선회 와 뜰채로 잡은 바닷가재 안주 를 장만하여 숨겨놓은 죠니워커 레드 면세위스키 를 벗삼아 밤만되면 술파티 하는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첫입항할 때 세관이 올라오면 면세주류 들을 일부 는 신고하고 일부는 본선에서 마시기 위해 일부러 숨겨 놓기도 한다.

특히 이란 은 금주국가 이기 때문에 술마시다 걸리면 좀 시끄러운 나라 라 조심을 해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시간이 유일한 즐거운 낙인걸 어쩌겠는가?...

마시지 말라는 술을 숨어서 마시는격 이니 술맛도 더 좋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웨이팅 한지도 한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선원들 입장에서 는 이렇게 항해를 하지않고 장시간 대기하면서 월급을 제 날짜에 받는게 제일로 행복한 시간이다.

게다가 밤만되면 풍성한 생선회에다 죠니워커를 즐기니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전쟁수당 도 두둑히 받을테고..

암튼..모두들 전쟁지역에 잘 왔다고 이구동성 이었다.

드디어 몇일이 더 지나자 대리점 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본선에서 회의 가 있으니 준비를 하란다.

다음날 통선이 도착하고, 대리점 과 해군측 에서 함께 본선으로 올라 왔다.

모두 모이자 해군측으로부터 교육이 시작 되었다.

 

1. 우리 가 실은 화물 은 호메이니항 에서 하역 을 할예정임.

2. 출항 시간 은 밤 8.

3. 출항과 동시에 선내 모든 불빛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소등을 해야함.

4. 항해등도 켜서는 않됨.

5. 항해코스 는 자동조타 로 하고, 기관실 및 조타실 은 당직자 한사람만.

6. 무전기 도 끄고 무전침묵을 해야함.

7. 해군측에서 지정한 장소를, 우리는 지정한 시간에 통과 해야함.

(만약, 지정해준시간에 지정한장소를 통과하지못하면, 적군 으로 간주해

포격을 받을수 있으니 명심하기바람.)

 

마지막으로 해군측에서 묻는게, 본선 의 속력 은 얼마인지를 물었다.

한참을 계산해 보더니, 통과장소 와 통과시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는 사인을 서로 하고, 대리점과 해군 은 하선을 하여 돌아갔다.

시간을 꼭 지키라고 다시한번 강조를 하였다.

이윽고 우리는.....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그동안 잘 놀면서 잘먹고 잘 지냈지!...’

뭐 별일 이야 있겠어?..’

 

우리는 그날밤 8시정각....

한달이상을 앙카링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반달아바스항을 조용히 숨을 죽이며 빠져 나왔다.

해군측에서 지정해준 장소로 코스를 잡고 항해 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배의 속력이 그동안 예상했던 속력 보다 덜 나가는 것이었다.

시간계산을 해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지정해준 시간안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한 상황 이 되어버렸다.

선내 비상회의가 열렸다.

다음 과 같은 결정이 났다.

 

1. 모든선원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중요한 소지품 가방 1개만 들고

선수 창고 로 집합을 한다.

2. 갑판부 기관부 당직자 도 선수창고 로 모이고, 15분에 한번씩 기관실과

조타실에 순찰 하러 갔다온다.

3. 늦어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엔진 회전수를 최대한 올린다.

 

그당시 이란과 이라크에서 사용한 미사일 은 기관실 연돌 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열 을 감지하여 주로 기관실 을 공격하여 폭파하는 소위 열추적 미사일 을 사용 하였다.

이는 주기관을 폭파하여 배가 더 이상 항해를 못하게 하는 전술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혹시나 기관실 이 미사일공격 을 받더라도, 기관실 과 반대방향 인 선수창고 쪽에 모두 모여서 사태 추이를 지켜 보기로 하였다.

이젠 선택 의 여지가 없었다.

숨가뿐 결정을 해야했다.

지정시간에 도착 못하여 미사일공격을 받는것이나,

기관회전수를 무리하게 정상보다 더 올려서 주기관 이 고장 나는것이나,

이미 상황 은 이판사판 상황 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살길 은 이제 회전수를 올리는수 밖엔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부디 아무탈 없이 기관이 잘 돌아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15분마다 기관실 을 다녀온 당직자 는 배기온도 도 그리 높지 않고 기관이 생각보단 잘 돌아간다는 보고였다.

천만다행 이었다.

배의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한달 이상을 정박해 있다보니 선체외판에 따개비 및 이끼류 같은게 잔뜩 달라붙어 배의 속력이 안나간 것인데, 처음에 해군측 과 미팅할 때 이점을 간과하지 못한게 실수 라면 실수 였었다.

선장도 이점을 실수한걸 쿨하게 인정을 하였다.

우리는 신통방통 하게도 주기관 이 아무 탈없이 잘 돌아가주어서 첫 번째 지정한 장소 에 가까스로 도착할수 가 있었다.

그렇게 첫번째 를 통과 하고 두번째, 세번째 목적지 까지 무사히

잘 통과하면서 밤새 항해를 하여 다음날 아침 에 호메이니항 에 도착을 하였다.

부두에 접안즉시 남미에서 45일 이나 걸려서 싣고온 화물을 하역하기 시작 하였다.

무사히 하역을 마치고 이제 다음 항차 는 South Africa DERBAN항 으로 결정이 났다고 대리점 이 스케줄 을 들고 출항수속을 하러 올라왔다.

우리는 또다시 인간올빼미 가되어 해질녁에 출항을 하여,

올때의 역순으로 항해를 시작 하였다.

걸음아 나살려라빠져 나오는데 이번에 는 배가 공선 이다 보니

올때와는 반대로 배가 너무 잘나가서 탈 이었다.

할수없이 엔진 회전수를 오히려 내려야 했다.

아무튼 우리는 배가 잘나가는 덕분에 지정시간보다 조금씩 일찍 통과하여 다음날 아침 에 무사히 위험지구를 벗어날수가 있었다.

맨날 보는 태양인데 그날아침 떠오르는 태양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기는 처음 이었다.

우리는 순항을 거듭하여 인도양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무사히 사우쓰 아프리카 더반항에 입항을 하였다.

 

[ She is a MAN ! ]

입항후 우리는 내심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대리점 이 빨리 올라 오기를 기다리는 것 이었다.

이유 는 독자여러분도 짐작을 하실테지만...

전쟁수당 때문 이었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흐흐흐 저게 돈가방 이렸다.

입항수속을 마치고 대리점 이 돌아간후, 드디어 선내방송 이 울려 퍼졌다.

모든선원 들은 식당으로 모이라는 3항사 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수령증 에 사인을 하고 돈봉투를 받아들고 각자 침실로 돌아가서는,

그동안 전쟁지역을 목숨걸고 다녀온 댓가로 받은 US dollar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돈냄새 도 맡아보고, 마치 무슨 복권에라도 당첨된냥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아주 야단법석을 떨었다.

일련번호 가 새겨져있는 신권 으로 받았으니 기분 이 더욱 삼삼 하였다.

그때 받은 신권 들은 우리가 사용개시 하게 된 셈이 되었다.

승선생활을 하면서 본선에서 월급 이외의 두둑한 수당을 받아보기는 이게 처음 이자 마지막 이었다.

여기서 액수를 밝히기는 뭐하지만, 당시로써는 기대이상 의 파격적인 수당이었다.

그때 미사일 을 맞아서 살아돌아 올수 없었다면 오늘이 있었겠는가?...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 이다.

다음날 우리는 부두에 접안을 하고 홍콩으로 가는 화물 을 선적하기 시작하였다.

이란에서 한달이상 을 앙카링 하면서 왠만한 기관실 정비 는 모두 끝낸상태 이기 때문에 더반 에서는 뭐 별달리 기관실 은 할 일이 없었다.

 

SOUTH AFRICA 'DURBAN항' 에서

 

우리 기관부 는 낮에는 갑판부 선적작업 때문에 그래도 미안하니까 눈치 슬슬 보면서 어영부영 하다가, 과업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후 우리는 대리점 이 알려 준 나이트클럽 으로 모두 직행을 하였다.

브라질 산토스 의 분위기가 여기도 있었다.

분위기 좋지...,

음악좋지...,

셰뇨리다 좋지...,

호주머니 에 돈 두둑하지...!

매일저녁 출근하여 붕어 물마시듯이 술을 마셔대니..

주인은 매일저녁 매상이 올라가니 표정관리 가 안되며 우리들 의 술실력 을 인정해 주었다.

우리가 원하는건 모두 들어 주었다.

주인 은 장사 가 잘되니까 우리 비위 맟추느라 아예 맥주 한병 시켜놓고 영업 끝날때까지 홀짝거리며 앉아있는 영양가 없는 손님 은 아예 입구에서부터 입장을 시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으로 Every Night 광란의밤 이었다.

누가 말리는사람도 없고...,

전쟁지역에서 무사히 살아돌아왔으니...,

모두 똑같이 미치는거였다!

한번 은 화장실 갔다오는데 주인 이 귓속말로 해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Be careful ! She is a man!..

주인입장에서 는 양쪽 모두 잘 알다보니, 솔직히 예기해 주는게 낫다 싶었는지...

주인이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여자복장 을 하면 모두 여자 인줄 알았는데...

우리는 생전처음 그동안 보도 듣도 못했던 여장남자 가 있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팁 몇푼 쥐어주고 는 모른체 조용히 타일러 보냈다.

다음날부터 는 모두 정신을 차리고 자제 하는 분위기 로 바뀌었다.

암튼 일생일대 의 즐거운시간을 보내고 어느듯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더반항을 떠나야 하는 아쉬운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선적작업을 완료 하고 출항을 하게 되었다.

 

싸이클론 을 만나 죽을고비를 넘기다

빠이롯드 가 하선한후 배는 Sea Speed 로 기관회전수를 올리고 전속력으로 홍콩을 향하여 인도양을 달리기 시작을 하였다.

출항을 한후 몇일이 지나고 날씨가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지금은 기압의 단위가 헥토파스칼이지만, 당시에는 밀리바로표현을 하였다

브리지 기압계를 보니 975 밀리바 까지 떨어졌다.

이정도면 열대성저기압 의 B급 태풍에 해당된다.

선수 는 파도속 으로 곤두박질 쳤다가는 부력 때문에 다시 고개를 쳐들고 물위로 튀어 올라오고,

선수가 물속에 잠길땐 선미 프로펠라가 물밖으로 나와서 공회전 하느라 엔진이 부르르 떨고,

코스를 변침 하려고 배를 돌리려 해도 바람이 얼마나 센지 배가 돌아가지를 않았다.

이런 황천항해 속에서 변침 하기위하여 배를 무리하게 방향을 돌리려 할 때 가 가장 위험한순간 인데, 덩치가 큰 파도를 옆 에서 잘못 맞으면 아무리 큰배 라도 한순간 에 전복될수 있는 것이다.

황천항해 일수록 회전수를 최대한 낯추고 파도타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뭐 빨리 그지역을 벗어나려고 엔진회전수를 올렸다가는 배는 어느한순간 사고를 당하게 된다.

갈수록 날씨 가 점점 좋지 않았다.

이미 침실 은 모든 물건 들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서 파도 치는데로 바닥에서 제멋대로 왔다갔다 나뒹굴고 있고...

끼니때가 되어 식사를 해야 하는데 반찬을 식탁에 차려 놓을수 가 없으니

국에 밥을 말아서 서서 들고 먹어야 했다.

제대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수없을정도로 배는 흔들어 댔다.

집체만한 파도 가 쿵 하고 선수를 때리면 뱃머리 는 완전히 물속에 잠겼다가 솟아 올라왔다.

이러기를 몇일...

모든선원들 은 구명동의를 입고 있었지만..

만약에 탈출한다고 한들 그 어느배가 이 파도속 을 헤치고 우리를 구조 하러 오겠는가?...

또한 구조선 이 온다한들 그때까지 물위에 떠서 과연 버틸수가 있단말인가?...

몇일 을 이렇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새 한숨도 자지도 못하고 거의 뜬눈 으로 밤을 지세우고,

죽음에 대한 공포 와 두려움 속에서 파도 와 싸우다 보니

나중에는 체력적으로 피로가 한계에 다다랐고 의욕이 없어져 버렸다.

모든게 자연스럽게 스스로 될데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 에 빠져 버렸다.

우린 이젠 이렇게 죽는구나!...

그동안 남의 이야기만 같았던 죽음 의 현실 이 바로 이거구나!...

삶에대한 희망 과 의지 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삶을 내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순간...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집에있는 가족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보고싶어졌다.

나는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성난 파도를 잠재우던 예수님 의 능력이 생각났다.

그렇게 순간적 으로 마음을 비우고 나니 파도치는데로, 흔들리는데로

모든게 두렵지가 않았다.

몇일을 폭풍우에 그렇게 시달렸을까?...

시간 이 지나니 해상의 파도 가 조금씩 잔잔해 지는 기미 가 보였다.

!...살았구나!..

그렇게 황천항해에서 벗어나고 날씨가 좋아져서 밖으로 갑판순찰 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밖에 묶어두었던 드럼통 은 빈 깡통 을 발로 밟은 것 처럼 푹 찌그러져있고

카고 붐대는 내려 앉았아있었다.

뭐 성한곳이 별로 없었다.

휘어지고,

뒤틀리고,

찌그러지고...

심각했다.

당장 홍콩에서 하역작업시 에 본선 크레인 은 사용할수 가 없게 되었다.

날씨가 다시 잔잔해지고 평온을 되찾은 다음 ,

선장은 원인분석을 해 보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그럴것이 아닌가?

천기도 상 으로 보면 자기가 결정한 코스 가 분명히 날씨가 좋아졌어야 하는데 반대로 점점 나빠졌으니..

선장 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선장이 본선에서 받아본 천기도 와 그때 날씨기상 을 다시 받아본 것 과 대조해 보니 뭔가 이상하게 틀려 있었다.

당시 목포해전 통신과를 갓졸업한 통신장이 승선하고 있었는데...

학교다니면서 공부도 제대로 안했는지...

통신 모로스부호 를 엉뚱하게 잘못받아서 엉터리 천기도를 작성 하였던 것이었다.

완전 돌팔이 통신장 였다.

살아서 돌아왔기 망정이지 그때 잘못되어 모두 사고를 당했다면...

모로스부호 도 제대로 받지못하는사람 이 어떻게 학교 는 졸업시험 에 통과 하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책임감 도 없는 한심한 친구였다.

그후로 날씨는 평온 하여 순항을 하며 우리는 홍콩 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역작업을 할려고 햇치카바를 열려고 하니 열리지가 않았다.

지난번 파도 에 햇치 카바 와 코밍이 파도 에 충격을 받아서 서로 뒤 틀려 버린거였다.

본사에 이번에 받은 모든 피해사항 을 리스트를 작성하여 보고를 하였다.

이제 다음항차 는 일본 오사카 항 이고 우리는 거기서 교대할 예정이며

본선 은 수리에 들어간다고 본사에서 전문이 날아왔다.

야호!

이제 여기 출항하면 귀국이다!

 

싸롱보이 의 자살사건

홍콩을 출항 하여 오사카 로 향하였다.

그당시 배에는 싸롱보이 라는 직책 이 있었는데,

주로 하는일 은 식사때 사관식당 써빙을 해주고,

선장.기관장.1항사.1기사 방청소 도 해주고,

식사준비때는 주방장을 도와 재료준비 와 설거지 같은 일을 하는 직책이다.

이제 몇일 있으면 오사카 에 입항 할테고

입항하면 상륙하여 귀국선물 쇼핑도 해야 할테고

마음 은 들떠 있어서 마치 어린아이 마냥 잠도 제대로 안오곤 하였다.

1년 만에 만나는 가족들생각하니 잠이 잘 오겠는가?..

애들 은 또 얼마나 컸을까?

하루 가 빨리 가기를 기다려 졌다.

오랜만에 책상서랍을 열고 지갑 에서 돈을 세어보니

이상하게 액수 가 안맞았다.

거참 ..이상하네!...

정신을 다시 차리고 아무리 세어봐도 돈이 없어진건 사실 이었다.

곧바로 선장 에게 배에 도둑이 있다고 분실사건에 대해 보고를 하였다.

소문 은 금세 선내 에 퍼졌고, 이윽고 돈이 없어졌다는 사람 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싸롱보이가 의심 이 갔다.

조용히 싸롱보이를 불렀다.

그리고 타이르듯이 물어 보았다.

결코 안가져 갔다는 것이었다.

심증 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더 이상 어쩌겠는가?

그져 닭 쫓던게 지붕 쳐다보듯이 전쟁수당 받은돈 이 사라졌으니

허탈할 수밖에...

다음날 아침!

이른아침 에 주방장 이 큰소리 로 다급하게 선장을 찾는소리 에 놀라서 통로로 뛰쳐나가 보았다.

싸롱보이 가 자기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현장을 확인한 선장 은 대리점을 통하여 일본 해상 보안청 에 신고를 하였고, 입항때까지 문을 잠근상태로 유지 하라는 전보 가 도착했다.

배가 오사카 에 입항을 하니, 해상보안청 과 대리점 이 함께 올라왔다.

배상보안청 입회 하에 마스터키 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방을 써치를 하였다.

서랍 을 열어보니 돈과 유서 가 함께 발견이 되었다.

유서를 읽어보니...

 

나이는 20.

고향은 경남 남해

부모없이 할머니.할아버지 밑에서 경제적 으로 어렵게 살아왔고

군대 가기전에 몇푼 이라도 벌어 보려고 배를 타러왔다고 적혀 있었다.

나쁜짖을 한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는 내용과,

양심 의 가책을 느껴 이렇게 죽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좀 불쌍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시신 은 한국으로 냉동운송 할거라고 해상보안청에서 가져갔다.

분위기 가 썰렁 했다.

이런분위기 속에서 몇일후 우리는 새로 승선한 교대멤버 에게 인수인계를 하여주고 부산 김해공항 행 귀국 비행기 에 몸을 실었다.

김해공항 에 도착하니,

부산 중부경찰서에서 봉고차를 미리 대기시켜 놓고 나탈리호선원들 은 이쪽으로 와서 모두 타시오!

하는거였다

중부경찰서 에 도착후 우리 는 진술서를 쓰고,조사를 받았다.

불행중 다행인 것 은 유서 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는 좀 자유롭게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 밖으로 나오는데 유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들을 향해 욕을 하며 맨앞사람 은 멱살을 잡혔고 난리가 났다

순간 우리 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걸음아 나살려라 각자 이길 저길로 우왕좌왕 냅다 달리기 시작 을 하였다.

나도 어느방향 인지 한참을 달리다 이젠 괞챦겠지 하고 주위를 둘러 보니, 아는사람 이 주위에 아무도 안보였다.

우리 는 이렇게....

1년동안 정들었고, 한솥밥을 먹으며, 전쟁지역 과 황천항해 에서 살아 돌아 왔건만....

마지막 에 아무런 서로 의 인사도 못나누고

이렇게 달리기 로 끝맺음 을 하였다.

- 10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