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면허증 을 취득하다 >
보운1호를 하선한후 즐거운 휴가를 보내며 생각한 것이 무엇을 어떻게 하면 보다 알차게 휴가를 보내는것일까?..
생각하다 이번휴가 는 운전면허를 따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자동차과를 나왔기 때문에 면허가 없어서 그렇지, 고등학교시절부터 자동차정비 와 운전 은 기본적으로 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남들은 면허를 따기 위하여 운전학원을 일부러 다녀야 하였지만,
난 학원다니는건 생략하고 혼자 연습을 하기로 하였다.
당시에는 1차 필기시험 합격후,
2차 는 지금과는 다른 'T' 자코스, ‘S'자코스, 등이 있었고,
현재의 도로주행시험 대신에, 면허시험장 내 의 코스를 지정시간 안에 위반사항 없이 돌면 합격 이었다.
혼자 연습을 여러날 하고, 이정도면 합격 할수 있을거 같았다.
드디어 대전에 있는 ‘산내운전면허시험장’ 에 접수를 하였다.
접수후 주욱 남들하는 실제상황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코치도 없이 혼자 연습은 했지만...생각과는 다르게 기분이 좀 별로였다.
아무튼 지정된 날짜에 일찍 도착하여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처음엔: 1차필기 합격. ‘T'자코스에서 바퀴가 라인타치. 불합격!
두번째 도전:‘T'자,’S'자 합격. 경사에서 일단정지 후출발. 불합격!
세번째 도전: 코스주행을 지정시간보다 일찍 도착.....불합격!
불합격사유 : ‘과속운전’ 이라나?...
네번째 도전:무사히 지정시간 안에 위반사항없이도착.......합격!
이렇게 4번 만에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수가 있었다.
운전면허 취득 이란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하였으니 ,
이제 본연의 임무 로 돌아가서 ,
다음날 부산으로 내려가서 여러군데 이력서를 접수 하고 올라 왔다.
< M/V TRAMONTANE 호 승선 >
학교졸업후 처음 상선을 타기위해서 여러군데 이력서를 넣었을때는 여러날을 기다려도 한군데서도 소식이 없더니,
이제 경력이 있다보니...
1주일후 ‘한승선박’ 이라는 회사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처음엔 M/V ‘ALADIN'호 에 승선 예정으로 배정받아서 선원수첩에 항만청승선공인을 받았었는데,
일정이 갑자기 바뀌어 , M/V 'TRAMONTANE' 호 2기사 로 승선을 하게되었다.
또다시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1983년11월29일 우리일행 은 김포를 이륙하여 그리이스 아테네 로 날아갔다.
그리이스 피라에우스 조선소 에서 수리 중인 ‘트라몬타네’ 호 에 승선 하였 다.
선 명 : TRAMONTANE
총톤수 : 29,073톤
주기관 : 디젤 17,600 마력
OWNER : GREECE
FLAG : PANAMA
약 보름간 에 걸쳐서 수리 를 끝내고, Dock out 하여 출항을 위한
연료 와 부식 을 선적 하였다.
공선 으로 아르헨티나 수도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로 항해 를 하였다.
아르헨티나 산 밀을 당시 구) 소련 흑해 연안에 위치해 있는 ‘오데사’항까지 실어나르 는 루트 에 1년간 챠터 되어 있었다.
아르헨티나에 가보니...
당시 아르헨티나는 1982년4월에 발생한 영국 과 아르헨티나 간에 포틀랜드전쟁 을 치룬 후유증으로 국가 의 경제 가 인플레이션 이 심한상태 에 놓여 있었다.
100달라 를 환전하면 100만 페소를 환전해 주었다.
어느 음식점 에 갔더니 1페소 짜리 로 벽에 온통 도배 를 해 놓았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래도 지금 기억 에 남는건, 아르헨티나 의 그 드넓은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발달된 축산업 이 기억에 남는다.
‘아사도’ 라는 은은한 숯불로 굽는 소갈비 바배큐통구이 맛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언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 은 무척 친절 하였다.
지금은 오랫동안 사용을 안하다보니 잊어 버렷는데...스페인어 는 배우기가 좀 쉬워 보였다.
저녁이면 소규모 선술집 비슷한곳 에서 펼쳐지던 ‘탱고’ 음악 과 댄스!..
‘로사리오’ 라는 도시 가 있는데, 강을 따라 내륙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내륙 항구도시 이름 이다.
우리일행 은 어느항차 인가 이곳 ‘로사리오’ 에 상륙할 기회가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무조건 술을 마시다가, 가져간 돈 모두 합쳐 보니 술값 계산 하기도 빡빡 하였다.
배로 돌아올 택시비가 없어서 오도가도 못하게 생겼었다.
그때 우리는 할수없이 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친절했던 술집 사장 은 택시를 불러서 택시비 까지 지불해 주어서 우리는 배로 돌아 올수 있었다.
다음에 또 놀러 오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하였고...
그러나 그후로 다시 가보지는 못했다.
< 구) 소련 오데사 항의 추억 >
아르헨티나에서 밀을 한배 가득 싣고 출항을 하면 대서양을 남에서 북으로 횡단하여, 서유럽 과 북아프리카 의 사이에 있는 지브랄타해협 을 지나야 한다.
지중해 를거쳐, 이스탄블 보스포루스대교 를 통과 하면, 흑해 연안에 위치한 오데사 항에 도달 할 수가 있다.
1983년9월1일 앵커리지를 이륙한 대한항공 여객기 가 캄챠카 영공을 통과할 무렵 소련 전투기 에 의하여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그사건 으로 인하여 우리선원 들은 소련 이라는 나라를 아주 나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학교에서 입이 마르고 닳토록 배웠던 공산주의 의 종주국인 소련 이 아니었던가?
사유재산을 부정하며,자본주의 의 모순인 빈부 의 격차를 없애고, 국가가 평등하게 집 과 음식을 배급 하여 똑같이 모두 잘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사상 이 공산주의 이론 아니었던가?
레닌 과 스탈린 이 주창했던 공산주의!......
북한 은 갈수가 없으니 못가보았고....
그 공산주의 의 원조국인 소련을 방문한다는게 나 개인적 으로 는 모든게 궁굼할 따름 이었다.
오히려 신비스러운 국가 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오데사 에 입항을 하니 제일먼저 긴 장총을 어깨 에 맨 군인들이 올라왔다.
말도없이... 살벌한 표정을 지으면서....
곧이어..대리점 과 함께 이미그레이션 이 올라오고...
세관이 올라오고...
마지막으로 입항수속을 마치고 상륙증을 전 선원들에게 끊어주는데,
밤12시 이전에 는 귀선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오후5시경에는 작업을 마치고...
때빼고 광내고 대리점 이 알려준 어느 술집 으로 모두 들 상륙을 하였다.
배는 본선 당직자 외 에 무장을 한 군인들이 잘 지켜 주고 있으니 도둑걱정 은 하지 않아도 될판 이었다.
근데...술집에 가보니...
여느 다른나라 와 똑같은 분위기였다.....
술도 있고...음악도 있고...음악에 맟춰 춤도 추고...셰노리다 도있고...
술취하여 큰소리로 떠들어도 누가 말리는사람 도 없고..
도대체 내가 생각했던 공산주의 는 술집도 없고,음악도없고,저녁에 흥청망청 음주문화가 없을줄 알았는데...
예상밖이었다.
밤12시 이전에 는 돌아와야 한다는게 좀 달랐었다.
근데.....
그 다음날 낮에 상륙을 하여 보니 차이점 이 확연히 드러났다.
시내구경을 하는데... 자본주의에서 는 길거리가 모두 개인소유 의 매장 이기 때문에 , 이에따른 상점간판이 길거리에 홍수를 이루고 있는반면...
여기 오데사 는 그 큰길거리 양쪽이 전부 1층부터 아파트 고,
개인 이 운영 하는 상점 이 없었다.
음료수좀 사먹으려는데 가게가 없었다.
할수없이 물어보니 어느 골목을 돌아가면 가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게 는 나라에서 운영하고, 생활필수품 을 배급 해주고, 더 필요한 물건을 원하면 물건을 팔고 있는..., 구역마다 하나씩 있다는 가게 였었다.
또한 인상에 남는건 자연사박물관 에 갔더니..시베리아 얼음속 에서 발굴한 고대 공룡뼈 화석 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는데, 그 뼈 의 규모 가 어마어마 하였다.
지금은 구) 소련이 붕괴되고, 오데사 지역 은 ‘우크라이나’ 로 독립 이 되어있다.
그리고 옜날 의 공산주의 때 보다는, 지금 은 자본주의 사유재산 제도 도
조금은 인정을 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 1기사 의 중도 하선 >
선박은 연료유 에 함유되어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청정기 를 돌려서 이 불순물을 제거 해 줘야 하고,
마챤가지로 Main Engine Oil Sump Tank 에 있는 윤활유 도 청정기 를 돌려서 청정을 해줘야 한다.
지금은 기술이 발달하여 청정기도 자동화 가 되었고, 만약 운전조건이 맞지 않아서 Over flow 가 되면 자동 stop 이 되기 때문에 기관사 들이 안심 하고 청정기를 돌릴수가 있다.
그러나 당시 ‘TRAMONTANE’ 호 에는,
온도,압력,유량,등을 일일이 사람손 으로 수동조작 해서 조건을 맟춰줘야 하였고,
하나라도 조건이 안 맞으면 over flow 로 이어졌다.
자동정지 되는게 아니고,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놔두면
사고로 이어지는것이었다.
따라서 청정기를 돌릴때면 아예 청정기 옆에 한사람 붙어 있던지,
5분마다 순찰을 돌던지 해야 하였다.
지금도 그때 청정기 때문에 당직때 마다 속썩던 생각하면 좀 지긋지긋 했었다.
근데 윤활유 sump tank 는 1기사 담당이기 때문에 1기사가 자기 당직 시간에 윤활유 청정기를 돌렸었다.
근데 새벽시간에 돌리다가 돌려놓고 깜빡 졸았다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청정기가 오바 하여 Main engine 오일이 다량 손실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조금 유출 되었으면 본선에서 어떻게 카바가 되었겠는데,
유출량이 좀 많다보니 기관장이 회사에 보고를 해버리고 말았다.
회사에서 교대 시키기로 방침을 세우고 도착항에서 다음1기사 와 교대를 하고 말았다.
이럴 경우 1기사는 귀국항공비 는 본인이 물어야 하는 손해를 보아야 한다.
선박은 100가지 잘하다가도 1가지 잘못하면 ,
그동안 100가지 잘한건 온데간데 없고,
잘못한것 한가지 때문에 책임을 지고 문책을 당하는게 선박생활이다.
내 기억엔 그 1기사는 일도 잘하고 부지런한 사람 이었는데...
좀 아쉬운 부분이 있는 사건 이었다.
< 선장님! 앙카 대가리 가 날라갔읍니다! >
한번 은 밀 을 한배 기득싣고 오데사항에 입항하다가 수심 이 얕아서 배가 오데사 항내에 aground 한적 이 있었다.
이럴땐 빈 바지선을 옆에 붙혀서 배가 뜰때까지 하역작업을 하여야 한다.
딱 한번 그런일이 있었고...
어느항차던가....
오데사 외항에 닻을 내리고 대기하고 몇일을 기다리는중에 갑자기 돌풍 이 불며 날씨가 나빠진적이 있었다.
갑판부 는 급기야 배가 이상하게 떠밀리는 것을 인지 하였고...
할수없이 전선원 S/B 가 내려졌다.
묘박지를 이동하기 위하여, 기관부 는 Main egine을 S/B를 하고,
선수에서는 앙카를 감던 1항사 로 부터
무전기로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선장님! 앙카 대가리가 날라 갔습니다”
“뭐라꼬?”
“앙카 대가리가 날라 갔습니다”
“진짜가?”
“네”
“............”
앙카 체인 이 피로한계 에 있었던건지..아니면..재질불량 이었던건지...
앙카는 끊어져 없어지고..빈 체인만 올라 왔던 것이었다.
흔치않은 일 이 벌어졌다.
빈 앙카체인 만 걷어올리고, 다른쪽 앙카를 다시 투묘 하는 일이 벌어 지기도 하였었다.
< 선장 의 부식비 횡령 사건 >
선박은 개인당 / 한끼당 얼마씩 부식비가 회사에서 책정 이 되어있다.
이 금액을 가지고 선원들이 선내에서 먹을 부식을 세계 각 항구에 분포 되어있는 각 선식점을 통하여 일괄 구입을 한다.
각 개인 적으로 구입하는건, 필요한 술과담배 로써 면세 이기 때문에 저렴하게 각자 필요한만큼 구입을 한다.
근데 이 부식비 는 보통 선장이 관리를 하고있으며, 부식구입이 필요하면 그 리스트 는 주방장이 주로 작성을 한다,
부식위원회 가 있다고 는 해도 거의 가 형식적으로 운영이 되는게 일반사 이다.
선식점 과 직접 연락을 취하고 가격네고 를 하며, 또 확정된 부식비를 업자에게 지출 하는 것은 선장 이기 때문이다.
부식 가격표 가 있다고는 하나, 선식업자 들 은 차후에도 자기네 선식을 이용해 달라는 의미에서 보통 선장에게 리베이트를 주는게 관행 이 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배 이든 이 부식비 때문에 늘 시끄러운 게 사실이다.
근데 그러한 부식비 관련 하여 식사를 잘먹이고 하면,
선식업자가 선장에게 설령 조금 인사치레 를 한다고해도 심증은 가나, 물적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원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반면에..
매일먹는 식사가 표나게 부실해지면 바로 선원들은 들고 일어난다.
이 TRAMONTANE 호 도 이래서 문제 가 되었다.
처음엔 부식이 잘 나오더니, 갈수록 질이 나빠지는 것이었다.
모두들 뒤에서 선장욕을 하고, 불평불만을 해도, 막상 선장 앞에서는 아무 말한마디 하는 사람 이 없었다.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불평불만 만 쌓여가고, 선내 분위기만 나빠졌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1년 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듯 귀국하는 마지막 항차 가 되었다.
이제 얼마있으면 서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것이었다.
선장 과 주방장을 제외한 전 선원들 은 비밀회의 를 하였다.
우선 주방장을 먼저 데려다 놓고, 반 공갈 형식으로 말로 족치며 확인 하는 순서를 밟았다.
주방장 이 아차 말실수 라도 하면, 누군가 가 주방장을 한방 갈기려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주방장 은 자기는 맹세코 부식비 에 대해서 는 일절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주방장을 선원들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제 선장 혼자 남았다,
제아무리 변명을 늘어 놓아도, 주방장이 선원들편 인 이상 이젠 꼼짝없이 불어야 한다.
보니까.주방장도 그동안 선장에게 많이 섭섭했던게 있었던 눈치 였다.
각설하고....
전선원들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선장을 초대하여 부식비 관련 질의 에 들어갔다.
예상했던대로 선장은 결백을 주장하였다.
어느대목 에선가 선장이 대답을 못하고 주방장핑계를 대었다.
이제 주방장이 그 대답을 해야할 시간이었다.
전선원들 시선이 주방장에게로 쏠렸다.
주방장은 결정적인 대답을 선원들 의 편이 되어 대답을 하였다.
그 주방장의 대답을 듣는순간 선장 은 꼬리를 내렸다.
한참 의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선장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기방에 있는 선용금 을 보관하는 금고 로 가더니,4000$ 을 가지고 내려왔다.
이렇게 이런저런 우여곡절 을 겼으며 TRAMONTANE 에서 함께 생활했던 우리 들은 독일 브레멜하벤 에서 후임자들 에게 인수 인계를 하여주고
1984년12월13일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M/V NATHALIE 호 승선 >
1985년3월20일 약 3개월간 의 꿈같은 휴가를 보내고 또 다시 가족 과 이별을 하여야 하였다
M/V TRAMONTANE 에서 2기사 를 마치고 귀국하여 보니,
당시 함께 승선했던 공갑생 기관장이 나를 1기사 로 의 승진을 적극추천 하여, 이번에 1기사 로 승진 하여 나가라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암튼 1기사 로 추천해준 공갑생 기관장 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말도 못하고 출국 을 하게 되었는데 , 그후로 소식을 모르겠다.
요르단 암만 공항에 도착하여보니 대리점에서 마중을 나와 있었다.
대리점 의 승용차 가 벤츠 였는데 승차감 이 정말 좋았다.
공항에서 벤츠를 타고, 사막을 통과하며 밖을 내다보니, 군데군데 도로옆으로 낙타의 시체가 눈에 띄였다.
대리점 직원에게 물어보니 달리는 차량 에 치여서 저렇게 죽는단다.
한참을 달려 와보니
NATHALIE호는 요르단 아카바 항에 정박해 있었다.
이 선박은 프랑스에서 건조한 선박인데 선내시설이 유럽식이라 거주시설 이 잘 되어 있었다.
선 명 : NATALIE
총톤수 : 11,542 톤
주기관 : 디젤 10,444 KW
OWNER : GREECE
FLAG : PANAMA
항로 는 World wide 부정기 항로 였지만,
주로 서 아프리카 지역을 많이 다녔다.
예나 지금 이나 너무나도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아프리카 사람들...
이제는 좀 상황 이 낳아졌는지 모르겠다.
배는 항구에 입항을 하게되면, 배에서 식사하고 남 은 음식 찌꺼기 는 함부로 버리지 않고 빈드럼통 에 모아 놓았다가 하루에 한번씩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업자가 와서 수거해 간다.
당시 매일 하루에 한번씩 희안한 광경이 목격 되었다.
이 짬밥통을 배 밑으로 내려 놓는 순간, 업자가 오기전 에,
아비규환 의 쟁탈전이 벌어진다.
짬밥통 에서 앞다투어 서로 먹을만한 음식을 찾기 위해서다.
업자는 주위에 흩어진 음식 쓰레기를 쓸어모아 가져가야 한다.
옥수수를 하역할 때는 사람들이 다수 몰려와 건물 처마밑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들 은, 열차 에 옥수수를 실어줄 때, 바닥에 떨어지는 옥수수 알맹이 를 줍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이었다.
떨어진 알맹이 줍는 것 을 누가 제재 하는 사람 은 없었다.
이들은 이걸 주워가서 곱게 빠아서 빵을 만들어 먹는다고 하였다.
어차피 누군가는 주변청소를 해야 하는데..
옥수수 를 가득실은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 이들이 왔다가면 주위는 정말로 깨끗이 자연청소 가 되었다.
보통 부두 의 하역설비 는, 배가 부두에 접안하면 배는 부두에 줄로 고정을 시키고, 크레인 은 배 옆 땅바닥에 깔려 있는 레일을 타고 왔다갔다 하면서 하역작업을 하는게 일반적인 방식인데...
아비잔 에 는 이게 반대로 되어 있었다.
하역작업용 크레인 을 부두에 딱 고정을 시켜 놓아서,
배의 짐을 풀기 위해서 는 배를 앞으로 옮겼다가, 뒤로 옮겼다가 하면서 하역작업을 해야 하였다.
이짓을 하기위해서 전선원들 은 상륙도 못하고 하루종일 배에서 S/B상태로 대기 하여야 하였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부두 시설 이었다.
짐 하나 풀면 배를 옮기고, 또 다른짐 풀려면 또 옮겨서 위치를 맟춰줘야하고...
희안한 광경이었다.
세계적으로 딱 하나 만 있는 부두 설비 였다.
기네스북 에는 안 올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대로 인지... 아니면 바닥에 레일을 깔았는지...무척 궁굼 하다.
< 죽어도 좋다 - 싸인을 하다 >
1980년9월 발발하여 무려 8년간이나 지속되었던 이란-이라크 전쟁 시절에 그 전쟁지역 에 들어갔다온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우리배는 남미 칠레에서 생선기름을 짜고 남는 생선깻묵을 싣고 이란 호메이니 항으로 가는 장장 45일 간의 긴항해를 해야 하는 다음항차 스케줄이 본선 으로 날아 들었다.
이란 은 이 생선깻묵을 수입하여 양의 사료로 가공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당시 이지역 은 전쟁지역 이라 모두들 가기를 꺼려 하는 지역 이었고
혹시 미사일에 맞아 배가 폭파 되기라도 하면 모두 죽는 목숨 이었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문제 가 아니었다.
본선에도 본사에서 계속 전문이 타전되고 있었다.
이번항차 는 확정적이며, 전쟁지역에 함께 승선하여 갈사람과 가지 않을 사람을 구분하여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배는 중간에 연료 와 부식을 선적하기 위하여 싱가폴에 들어갈 예정이고,
거기서 선원들 교대 가 있을 예정 이라는 전문이 계속 날라왔다.
전쟁지역에 들어가게되면 전쟁위험수당 이 지급될것이며,
혹시 일 이 잘못되어 죽게되더라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는다는 싸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선원들 은 몇일 을 밥만 먹으면 어쩔건지 삼삼오오 대화를 하였다.
드디어 결정 을 해야하는 날이 밝았다.
‘가지않겠다’ 는 사람 과 ‘가겠다’ 는 사람 이 분명히 선이 그어졌다.
나는 ‘가겠다’ 에 싸인을 하였고, 죽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 에도 싸인 을 하였다.
나는 이 결정을 하기에 앞서 나 나름대로 분석을 해 놓은게 있었다.
당시 이란 이든 , 이라크 든, 호르무즈해협 을 통과하는 선박 모두를 미사일 로 공격하는게 아니었고,
주로 공격목표 가 원유를 실어 나르는 대형 유조선 이었다는 것 에 주목을 하였다.
우리배 는 유조선 이 아닌 General Cargo 선 이었으며, 실려 있는 화물도 원유 가 아니었기 때문에 속으로 는 별문제 없을거라고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전쟁 이라는 명제 는 한치앞 을 예측 할수 없는게 또한 현실 이었다.
싱가폴 에서 교대자 를 승선시키고, 부식 과 연료 를 보급 받은 후 우리는 호랑이소굴 인 호르무즈해협 으로 조심조심 항해하여 들어갔다.
이란 대리점 으로부터 전보연락 이 왔다.
호메이니항 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반달압바스항 에서 대기할 예정이니 그리로 입항 하라는 전문 이었다.
호르무즈해협 을 들어서자, 그동안 미사일 폭격 을 맞아서 선체 옆구리에 구멍이 뻥뻥 뚤린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선박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NATHALIE 호 기관실 콘트롤 룸 에서 당직중에....
-제9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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