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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의 자서전 (제3부)

김홍열 의 블로그 2010. 12. 4. 13:10

 

묘금국민학교 졸업사진

 

 

그렇게 운좋게도 하늘의 도우심 으로 다시 건강 을 회복하신 아버지 께서 는 그후로 오히려 잔병치래 없이 평생 을 건강하게 사셨다.

묘금초등학교 에서의 6년이란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고...우리는 1968년2월에 졸업 을 하였다.

그동안 정들었던, 교실...책상...운동장...교문... 을 뒤로하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 뿔뿔히 흩어졌다.

졸업후 중학교 로 진학한 친구들 도 있었고 ,고향 에서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농사일 을 하는친구들 도 있었다..

나는 대전 충남중학교 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입학을 하였다,

다른아이들 은 옥천중학교, 심천중학교, 청산중학교 등지로 우물안 개구리들이 집을떠나 새로운 환경에 접하게 되었다.

내가 충남중학교 에 입학시험 을 치러 갔을때 처음으로 대전역 에서 택시 라는걸 타 보았다.

인근각지 에서 이학교 에 입학 할려고 많은 학생들이 응시 를 하여 약 2대1 이 가까운 경쟁률 이었던걸 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당시 대전중학교, 충남중학교, 한밭중학교 가 상위그룹 에 속해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문제 하나가 있다.

배추이름 이 무엇이냐고 하는 4지선다형 에서 고르는문제 였었는데 정답이 ‘포두련배추’ 였었다. 왜 이문제 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실력도 실력 일테지만 내가 충남중학교 에 입할할수 있었던건 부모님 들 의 나 에 대한 정성이 큰비중 을 차지한다.

당시 묘금국민학교 에 김인수 선생님 께서 근무 하고 계셨는데 우리집에서 하숙을 하시면서 내 진학공부 를 좀 도와달라고 하시는 부모님들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 김인수 선생님께서 당시 내 가정교사 를 해주셨기 때문이다.

당시 김인수 선생님 의 서울에 계시는 한 친구분 이 진학예상문제지 를 달달이 보내주셔서 그 문제지 를 풀어본게 대단한 효과가 있었던거갔다.

그 김인수 선생님 께서 는 그후 미국으로 이민 을 가셨다.

내가 먼훗날 미국 휴스턴 에 잠시 배를타고 입항했을때 어렵게 수소문하여 입수한 김인수 선생님 미국전화번호 로 전화 를 혹시나 하고 해보았는데 연결이 되어 실로 반가운 통화 를 하였다.

지금 은 또 소식이 두절되어서 몹시 궁굼할 뿐이다.

살아계시다면 이제 80 이 가까운 연세가 되셨을거 같다.

그 선생님 때문에 스피드스케이팅 타는법도 배웠고, 선생님께서 구성지게 부르는 우리나라 가곡 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도 하였고, 사람 은 운동 을 해야한다고 유도 도 가르쳐 주셨다.

겨울방학 이 되면 당시 청성초등학교 에서 교편 을 잡으시던 이모부님 도 돌목 으로 놀러 오셔서 김인수 선생님 과 친하게 교제 를 나누시던 기억 이 난다.

당시 이모부님 께서는 ‘예화산탄’ 에서 만든 산탄공기총 을 가지고 계셨는데, 청성에서 돌목 오실때까지 공기총 으로 잡은 새들 을 옆구리 에 묵직하게 차고 저녁무렵 에 집에 들어오시면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이 새들 의 새털 을 일일이 모두뽑아내고 사랑방에서 화롯불 에 맛있게 구워먹던 생각이 난다.

그때 구워먹던 참새맛 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여름방학때면 가끔씩 동네 에서 연극 도 햇었고, 동네 청년 들 은 마이크 를 빌려다가 콩쿨대회 같은것도 하곤 하였다.

추석명절 어떤때는 광주리산 에 있는 천연동굴 탐험 도 가곤했었다.

충남중학교 에 입학을 하면서 신흥동에 친척 되시는분 이 판자촌 단칸방 에 살고 계셨었는데 그 단칸방에서 나는 몇 달간 을 함께 지냈다.

학교 까지 는 10분정도 걸어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어린나이 에 생각해 보아도 이게 할짓이 아니었다.

보다못한 부모님 들은 대단한 결심 을 하신거 같았다,

당시 석교동 에 대전시 에서 짓는 연립주택 이 있었는데 거기에 응모하셔서 당첨이 되시니 돌목에서 지으시던 농사 를 일부 정리 를 하시고 대전으로 아예 이사 를 나오셨다.

뒷집에는 집안 어르신네가 심성이 참 고우셨던 분들인데, 충남중학교 1년후배 인 ‘강 남구’ 네가 살았고, 옆집에는 동장님 이셨던 분네 가 살았다.

이때의 석교동 은 아직 주위가 논으로 둘러쌓여있는 시골모습 그대로 였다. 25번 시내버스가 석교동-회덕 구간 을 운행하였는데 시내까지 갈려면 한참 을 가야하는 그야말로 당시에는 변두리 지역이었다. 미군부대 가있는 식장산이 가까웠고, 대전의 휴식처 인 보문산 이 가까웠다.

부모님 들 은 인동시장 에서 가게 를 임대하여 야채장사 도 하시고, 집앞에 가게 를 지어서 문방구 를 내기도 하셨다.

밤만되면 천지가 캄캄한게 당연했던 호롱불 밑에서 생활하다가 밤에도 대낮같이 훤한 전기불 밑에서 생활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동안 은 참 희한한 밤세상 에 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그판자집 은 아무런 방음 시설없이 판자위에 벽도배만 하여 지은집이라 옆집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까지도 다들렸다.

그런데 그 옆집에는 아이가 하나있는 부부가 살았는데 남자가 퇴근만 하고오면 그렇게 부부싸움 을 하는거였다.

부부싸움 이라기 보다는 남자가 먼저 마누라에게 시비 를 일일이 거는거였다. 오늘 은 반찬 이 왜 이러냐..뭐 하여 튼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연일 마누라 를 집에만 오면 들들 볶아대는 희한한 남자였다.

당시 공군기교단 에근무하는 문관 이었는데 생기기는 멀쩡한데 마누라 를 그렇게 들들 볶았다.

중학교에 입학 을 하여보니,

영어다 수학이다 한문이다... 과목마다 바뀌는 선생님들...

특히 유명순 영어선생님 의 나무분필통 뚜껑 으로 머리알밤 을 안맞아본 친구 는 없을거다

1학년이 8반까지 있었는데 그후 나는 석교동에서 아버지께서 자전거 를 사주셔서 , 그 자전거로 통학 을 하였다.

1학년때는 김창균선생님. 2학년때는 김인숙선생님. 3학년때는 강보원선생님.

께서 담임 을 해주셨다.

중1때 임인규 친구와 함께 교정에서...

 

 

충남중학교 에는 야구부 가 있었는데 그때 야구 를 처음 알게되었고, 중요한 야구시합 이 있을때면 대전공설운동장 야구장 으로 전교생 이 응원 을 가곤하였다.

1학년때 부기선생님 이 한분 계셨는데 그선생님 은 수업시간만 되면 자습 을 시키는거였다.

그리고 는 교실 뒤에서 무슨 스텦 같은걸 혼자 왔다갔다 하면서 때로는 혼자 휙 도는동작 에다가 뭐 하여튼 이상한 연습을 하고계셨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그게 지리박 사교춤 연습 을 혼자 그렇게 우리는 자습을 시켜놓고 하고계셨던 거였다.

3학년 봄소풍때 는 장기자랑 시간에 박해동 친구가 ‘황규현’ 의 ‘애원’ 을 열창 을 하며 불렀는데,

우리 는 정말 그때 큰 감동 을 받았다.

박해동 친구 덕분에 나는 이노래 를 알게 되었고,

그때이후 나는 이 노래 를 좋아하게 되었다.

 

                                    [애 원]

                 [목이메어 불러보는 내마음 을 아시나요]

                 [사랑했던 내님 은 철새따라 가 버렸네..]

                 [허무한 마음 으로 올리는 기도소리 그대는 아나요 무정한내사랑아...]

                 [몸부림 쳐봐도 들리는 기약없이 가버린 그님 을 소리쳐 불러본다..]

                 [내사랑 아 ...내사랑아...소식이나 전해다오...]

 

박해동 친구 는 충남중학교 졸업후 5년제목포해양전문학교 에 들어가서 졸업후 외항선 항해사 를 하다가, 다시 신학교 를 들어가서 지금 은 목사 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이 산내 였었는데, 지금 어느교회 에서 시무를 하고있는지 무척이나 궁굼하고 보고싶은 친구중에 하나다.

3학년이 되면서 진학반 이다. 취업반이다. 특수반 이다. 하면서 반을 가르는 거였다.

나는 누구와 상의도 없이 내맘대로 취업반에 가입 을 하였다.

수업 은 오전4시간 만 하고 오후에는 실습실 로 이동하여 무슨 목각인형 같은거나 깎고, 숫돌에 조각칼 가는 실습이나 하고 뭐 이런게 전부였다.

가서보니 취업반 은 평소에 공부 는 뒷전이고 껄렁거리는 아이들 은 다 여기 모여 있는게 아닌가?

오후에 공부 는 안하니 마음 은 편하였다.

그런데 일제고사 시험 을 치르고 나서 나의 성적 을 보시더니 강보선 담임 선생님 께서 ‘너 내일 부모님 모시고 학교에 오라’ 고 하는거였다.

뭐 잘못한것도 없는데 왠일이지? 하면서 다음날 아버지 랑 학교에 갔다.

아버지 에게 ‘왜 그래요?’ 물어 봤더니, ‘너 취업반 이라는데 들어갔냐?’

고 물어보시길래, 그렇다고 하니..

담임선생님 이 ‘너 당장 진학반으로 옮겨서 고등학교 에 진학하라’ 고 하신다 는 거였다. 그래서 할수없이 진학반 으로 옮겨서 하루종일 늦게까지 다시 입시공부 를 시작하였다.

돌목에서 농사만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막상 대전으로 나오셔서 생활하려니 여러 가지 경제적 으로 어려우신점 이 많으셨던것 을 안 누나가 택시 운전 을 시작하여 우리가족 의 수입원 으로 일목을 담당하였다.

충남중학교 졸업식 을 마치고 반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 3년 의 세월도 그럭저럭 다 지나가고,드디어 고등학교 입시원서 를 쓰는날 이 되었다.

어딜지원할까 망설이다가 충남공업고등학교 자동차과 를 지원하였다.

누나 는 대전고등학교 에 원서 를 내라고 여러차례 이야기 했는데 나는 왠지 자동차 라는게 더 흥미 를 끌었다.

따라서 그때 ‘충남공고’ 은 2차였기 때문에 1차 는 시험 을 보지도 않고 있다가, 바로 2차에 시험을 치러서 합격 을 하였다.

자동차과 합격자명단 120명 중에 내이름 이 6번째로 있었는데 이게 6등으로 합격었다는 뜻이란다.

아무튼 문화동에 있는 충남공업고등학교 자동차 과 에 입학을 하고 고등학교 의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입학을 하고 처음 등교하는날 육창환 이라는 아이 가 교단 으로 턱 나가더니 ,자기가 이 문화동에 터주대감 인데 앞으로 너희들 나한테 잘해야 한다고 큰소리 를 쳤다.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한 학생이 앞으로 나가더니

너 그럼 나하고 맞장 한번 떠보자고 하여 둘이 한판 교실에서 대판 싸움을 하던 기억이 난다.

이름모를 용감했던 이 학생 은 몇일간 은 보이더니 어느날 부터인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궁굼하여 물어보니, 이런 깡패학교 같은데 는 다니기싫다고 1년재수하여 다른학교 간다고 가버렸단다.

이 학생의 싸움실력 과 대단한 결단력 으로볼때 아마도 지금쯤 뭔가는 한자리 하고 있을것으로 본다.

충남공고 는 1.광산과 2.방직과 3.자동차과 4.전기과 5.기계과 6.화공과 가 있었다.

학교에 배구부 가 있었는데, 충무체육관 에서 시합이 있으면 또 전교생이 응원 을 갔었다. 이때만든 학교 응원구호 가 있었는데,

‘광-.방-.자-.전-.기-.화-. 광방자전기화. 광방자전기화. 야!

하는구호였다.

전교생이 모여 한목소리로 하는 이 구호 는 충무체육관 이 떠나갈듯 하였다.

입학을하고보니 자동차 과 실습실 에는 6.25때 미군이 쓰던 각종 찝차며,시보레 승용차며,군용트럭이며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폐차직전 의 자동차 들이 실습기자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 야간도 있었는데, 야간반 은 낮에는 직장에서 돈을 벌고 밤에는 학교에서 수업 을 받는 이 학생들 이야말로 대단한 학생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무슨 ‘기능경기대회’ 라는게 있어서 각 분야별로 지방대회 및 전국대회가 있었다.

나는 자동차엔진 분해조립 부분에 관심이있어서 이대회에 한번 나가보고싶었다.

그래서 학교정규수업 이 끝나면 실습실로 가서 선배들 공구심부름도 하고 실습실 청소도하고 하여 선배들 과 친분 을 쌓았다.

어느듯 나를 신임 을 한후부터 는 나도 직접 엔진분해조립 을 시키는거였다.

그때부터 방과후 본격적으로 엔진분해조립실습 을 할 수가 있었다.

1학년때 봄소풍 을 대둔산 으로 갔었다.

고1때 '대둔산' 으로 봄소풍 가서.....

 

가는버스 안에서 육창환 이라는 학생이 갑자기 발작을 하더니 게거품 을 하며 쓰러지는거였다.

그렇게 얼마후 지나더니 멀쩡하게 일어나는거였다. 간질병 환자였던 거였다.

교련시간에도 그러고 심심하면 수업시간에도 발작을 여러번하였다.

하여튼 이친구 때문에 3년간 이상한장면 참 여러번 보았다.

처음입학시험 을 보러갔을땐 비가온 후 였는데 땅이 황토흙에 푹푹빠지는 게 장화신고 등교해야 할 정도였다.

 

입학 을 하고나니

 

1학년땐 체육시간.교련시간 만되면 삽들고 운동장 가꾸고 ,화단가꾸고 하는게 일이었다.

얼마가 지나니 박정희 대통령 의 특별지시로 각 지방마다 한학교 씩 공업계고등학교 를 지원하는 정책이 있었는데, 우리학교가 그정책 에 포함되어 민관식 문교부장관 이 학교 시찰도 나오고, 무슨 차관 을 도입하여 실습실 도 건축하여 증설하고, 실습기자재 도 들여오고 ,교내 조경수도 멋있는 나무를 심기도하고 ,교내 길도 아스팔트 로 산뜻하게 포장을 하였다.

학교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1학년 2학기 가 되면서 교련시간에 목총으로 총검술 16개동작 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제3부끝-